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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창조과학은 교회 앞마당에서 굴러 다닌다

샤마임 2017.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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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창조과학은 교회 앞마당에서 굴러다닌다

2017 6 16일 금요일 맑고 흐림




 

어제 자정을 넘겨 겨우  원고를 넘겼다. 지난 한 주를 글을 쓰지 못해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에 미리 글을 써둔 덕분에 무리하지는 않았다. 성경을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깨닫는다. 믿음은 어쩌면 기억하는 것이고, 기억함으로 지표를 바로 세우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민이 되는 것은 성경에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지금 여기에서 삶을 영위하는 나에게 비치는 하나님은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성경 속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간섭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어떤가? 거두절미하고 침묵하시고 간섭하지 않으신다. 물론 이것은 해석이다. 그러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있을까?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해석인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읽기도 결국은 성경 자체 이전에 독자의 그 무엇이 성경을 판단하고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독서의 결론은 책이 독자를 읽는 것이고, 더 나아가 독자 자신을 읽는 것이다. 성경 읽기도 성경 자체를 읽고, 그다음은 성경이 독자를 읽고, 마침내 독자가 독자 자신을 읽는 것이다. 만약 자신 읽기에 실패했다면 성경 읽기는 실패한 것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지만, 아무도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일종의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우종학 교수의 <과학 시대의 오전과 기독교의 응답>(새물결플러스)를 읽었다. 전에 읽었던 임태규의 <아론의 송아지>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론의 송아지>가 창조과학의 빈약함과 오류를 강조한 것이라면, <과학 시대의 오전과 기독교의 응답>는 좀 더 치밀하게 과학적 해석이 옳다는 것을 강조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창조과학은 교회 앞마당에서 굴러 다닌다'라는 표현이다.(222) 이 말은 창조과학은 사실과 증거에 근거하지 않고 교회를 등에 업고 교리적 논리적 접근을 통해 확실히 드러나 과학적 증거에 눈 감고 오류에 가득 찬 창조과학만을 고집한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창조과학자들의 미숙함은 임택규의 <아론의 송아지>에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거절된다. 임택규는 아론의 송아지처럼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증언들로 믿음과 진리라는 옷을 입고 과학적 근거들을 비판한다고 일갈한다. 이러한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과학적 사고와 사실에 근거한 학문적 소양을 갖춘 현대교회 교인들의 신앙에 해를 입히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나 성경 신학자들의 경우 창조와 관련해 수많은 이론과 주장이 있으며, 성경 자체가 창조에 관하여 현대적 과학 기술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경은 창조를 주장하나 진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수적 구약 신학자인 트럼펫 롱맨 3세는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 1-2장을 통해 하나님이 우주나 인간은 존재하게 하신 방법을 배울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다른 분야의 학문을 통해 해답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위해 진화라는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개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창조 기사 논쟁> 281)


<창조 기사 논쟁>은 한국 교회가 창조에 관한 생각이나 관점이 얼마나 협소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창조에 관련된 많은 '사실''증거'들은 조작된 것이나 오류고 가득 찬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창조과학은 일종의 사기라도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편견으로 가득 찬 창조과학은 분명히 드러나 증거들에 대해 눈 감고 사실에 기반을 둔 논증보다는 교리적 추론에 의해 과학과 진화를 공격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진화는 성경에 위배되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갖가지 증거들은 제시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증거들은 대부분 가짜 거나 모호한 것들이다.


이재만 선교사는 최근에 펴낸 그의 책 <타협의 거센 바람>에서 창조과학이 제칠일안식교의 극단적 문자주의 성경 해석을 공유한 것을 인정한다.(41) 그러나 성경의 교리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기에 '창조과학이 안식교에 뿌리는 독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41)이라고 일갈한다. 이 부분은 로널드 L. 넘버스의 <창조론자들>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진다. 이재만 선교사의 주장은 더 들어보면 그는 '성경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 자세를 이단과 연결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아니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 들을 이단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166-7)라며 문자적 6일 창조를 옹호하며, 그것을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이단'으로 취급한다.


필자는 이재만 선교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의 논리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근거가 잘못되었다. 생물학을 교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한 문자적 6일 창조에 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6일 창조는 아직도 논란이 많으며, 많은 보수 신학자들도 시간적 6일 창조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그것을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이단이라 말하는 것은 무례다. 창조과학자들이 좀 더 사실과 증거에 천착하여 고민하길 소망한다.


필자가 창조과학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건강에 대해 고민할 때 의학 서적을 읽고 면역체계와 몸의 순환 구조 등에 관심을 가졌다. 좀 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세포학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옅은 지식으로 의학전문 서적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이해는 가능했다. 의학의 최고봉은 세포학이나 분자생물학인듯하다.


생물학에 무지하지만 필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필자의 언어로 기술하면 이렇다. 세포는 진화한다고 믿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항체라는 것이 있다. 항체는 정의는 이렇다.


 

항체(抗體, antibody, Ab, immunoglobulin, Ig)는 항원과 특이적 결합을 하여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혈액의 혈소판은 적혈구와 반응하여 응집하고 태어날 때부터 항상 가지고 있으므로 정상 항체 또는 동종 항체라 한다. 면역 체계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항원들과 특이적 결합을 하여 항원을 인식하게 하고 동시에 무력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면역글로불린은 면역 항체라고 하는데 보통 항체라고 하면 면역 항체를 뜻한다.

-출처 위키백과 <항체> 중에서

 

쉽게 말하면 이렇다. 우리 몸에는 다양한 면역 세포들이 있다. 면역 세포들은 외부 바이러스나 잘못된 분화로 자유기(Free Radical)가 되는 세포들을 파괴하는 역할을 갖는다. 우리 몸이 잘못된 분화가 일어나지 않고 바이러스로부터 막아 내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그런 잘못된 세포들을 즉각적으로 파괴하는 NK의 세포도 있고, T 세포처럼 바이러스나 암세포 등을 관찰하고 살펴 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기억해 둔다. 이것을 항체라고 한다. 나중에 동일한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관찰하고 살피는 시간을 갖지 않고 곧바로 공격한다. 한 번 만들어진 항체는 영원히 기억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의 면역 세포들에게 기억을 전수하게 된다.


생물학에 무지한 필자의 허술한 이야기가 진화의 근거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포들은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변화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천문학자인 우종학 교수는 최근의 연구에 근거해 지구의 나이를 138억 년으로 잡는다.(69)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과 신앙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인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그렇다고 수많은 과학적 증거를 눈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변강부회((牽強附會))식의 주장은 결국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부인하는 천주교회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아직 길이 멀다. 부디 창조론자들과 진화를 옹호하는 기독교 과학자들 간의 합리적 소통이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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