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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칭의 논쟁을 생각하다

샤마임 2017. 2. 2.

[독서일기] 칭의 논쟁을 생각하다

2017년 2월 2일

칭의 (稱義, Justification)는 의롭게 된다는 법정 용어다. 신학에서는 칭의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데, 그만큼 논란도 많고 의견도 다양하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이신칭의'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칭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며 화두다. 사실 그동안 칭의는 잠잠했다. 아니 몇 년 동안 논란의 핵심에서 가라앉았다. 간간이 논문 주제나 누군가의 관심의 대상이긴 했지만 화두는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년부터 칭의 문제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더니 지금은 기독교의 중요한 화두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잠시 일어난 거품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출간되는 책들의 많은 부분이 칭의다. 


먼저, 2016년에 나온 책들을 보자.

최갑종의 <칭의란 무엇인가>와 톰 라이트의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가 12월에 출간되었고. 한 달전에 제임스 패커 외가 기고한 글로 모아진 <칭이의 여러 얼굴>이 11월에 이레서원에서 출간되었다. 5월에 박영돈의 <톰 라이트 칭의로 다시 읽기>가 IVP에서 출간되었다. 이것으로 끝날 것 같은데 아니다. 2월에 박재은의 <칭의, 균형 있게 이해하기>가 부흥과개혁사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에 출간된 칭의도 적지 않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이신칭의>(생명의말씀사)

노병기의 <거룩한 칭의>(예영커뮤니케이션)

마이클 호튼 외 <칭의 논쟁>(새물결플러스) 2015년 2월

까지 포함한다면 일 년 동안 '칭의'란 주제로 출간된 책이 무려 6권이다. 이것은 김인환의 <이신칭의의 복음>(쿰람출판사) 설교집을 뺀 것이다. 


그전에 출간된 책들이다. 

강철홍 <칭의가 은혜를 말하다>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14년 9월

김세윤 <칭의와 성화> 두란노 | 2013년 8월

박동근 <칭의의 복음> 합신대학원출판부  2012년 2월

호라티우스 보나르 <영원한 의> 지평서원  2013년 2월

가이워터스<칭의 교리에 대한 도전에 답하다> 솔라피데출판사 2012년 1월 

아더핑크 <이신칭의> 도서출판 누가 | 2013년 7월 

그러니까 간간이 출간되던 칭의 관련 책들이 2015년 이후 갑자기 논쟁 거리가 된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루터'가 빠져있다. 최근의 루터 관련 책들이다. 

뤼시앵 페브르의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이른비 2016.11), 

제임스 레스턴의 <루터의 밧모섬>(이른비 2016.11)

김명수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생애와 사상>(그리심 2016.11)

헤르만 셀더하위스 <루터, 루터를 말하다>(세움북스 2016. 10)

스콧 H. 헨드릭스 <마르틴 루터>(뿌리와이파리 2016. 6)

칭의가 곧 루터라는 넓은 범주로 엮어내면 '칭의'에 대한 관심은 과할 만큼 심하다. 칭의는 신학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음에도 칭의 관련 책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는 말은 최근의 관심사가 '칭의'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 왜 칭의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사실 칭의는 보수 개신교의 핵심 교리다. 칭의는 불가항력적 은혜가 전제하는 소명과 중생,  그다음은 회심이 이어진다. 회심 이후가 바로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는 칭의가 등장한다. 이전 단계가 개인적이고 비공개적이라면 '칭의'는 공개적 선언이며, 그 후로 이어질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니까 칭의는 결국 비공식적에서 공식적 선으로 바꾸는 변곡점이 된다. 

칭의에 대한 정의는 앞으로 이어질 성화의 문제에 직결된다. 칭의가 다분히 논쟁적인 이슈가 된 이유는 바로 '성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칭의가 있다면 결국 거룩한 삶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회심했다고하는 이들에게도 변절과 타락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칭의는 무엇이 되는가? 바로 여기서 칭의는 논쟁의 화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칭의가 논쟁의 주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필자의 견해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몇 가지를 언급한다면, 

먼저, 기독교의 타락, 두번째, 목사의 타락, 세번째, 보수 기독교의 시대를 읽지 못하는 한계성 을 들 수 있다.

이젠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목회자들의 타락이 심각해 지고 있으며, 숨겨지지 않고 보편화 공개적이 되고 있다. 즉 기독교가 뻔뻔해진 것이다. 글쎄, 이것만 가지고 신학적 주제인 칭의의 부활을 언급하기엔 약하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의 쇠락은 중세의 카톨릭과 너무 닮았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새로운 칭의를 들고 나올 New 루터가 나오지 않을까? 

칭의 관련 책들의 아쉬움은 다분히 논쟁적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설교까지. 그러니 일반 교인들이 칭의 서적을 읽을리는 만무하다. 칭의는 삼위일체와 같은 교리적이며, 난해한 주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집약된 중요한 주제이다. 이제 논쟁적 칭의가 아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칭의 관련 책들이 몇 권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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