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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난제]눅 10:38-42 마르다와 마리아 해설 난제

샤마임 2016.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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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0:38-42 마르다와 마리아 해설 난제


이 본문은 난제다. 만약 눅 10:38-42만을 따로 떼어 놓는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말씀을 청종하는 마리아의행위는 칭찬 받을만 하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이란 행위적 연관성이 개입된면 난제에 빠진다. 바로 앞 본문이 그토록 유명한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의 핵심은 '너도 가서 행하라'는 것이다. 즉 말씀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실천하기 전까지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는 혁명적 선언이다. 그런데 바로 그 후, 실천적 행위를 하는 마르다는 책망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난제가 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듯 하지만 실천이란 맥락에서 본다면 두 이야기는 논리적 합리성이 떨어진다. 


많은 목사들이 눅 10:38-42 만을 따로 떼서 설교한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연관성을 끊어버린 것은 실수다. 왜냐하면 말씀은 행위로 드러날 때 참이 된다. 그런데 참처럼 보이는 마르다의 섬김이 비판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로 이 이상함을 누락시키는 것이 말씀의 전체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주석은 편하게 따로 떼서 주해한다. 편한 주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주해다. WBC, LAB 주석등은 두 이야기를 비교한듯하면서도 모호하게 넘어가 버린다. 찰스 스윈돌은 아예 비교 조차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앵커바이블은 세 쪽이나 활당하며 두 이야기를 비교한다. 결국 동일한 결론으로 넘어가지만 비교의 과정은 상당히 유익하다. 


앵커바이블의 저자 조셉 A. 피츠마이어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선한 사마리아인 에피소드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이 에피소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것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이웃 사랑의 범주를 넘어선다. 마르다의 섬김이 거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그 정성 깃든 취지가 시기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셈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말씀의 행동력에 대한 것이라면, 마르다의 이야기는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결국 두 이야기는 다른 듯 하지만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의 핵심도 말씀을 거스르는 그릇된 생각들을 걷어 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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