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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일반서적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by 하늘땅소망 2015. 10. 15.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 조영렬 옮김 / 교육서가

 

불멸의 인문학 고전을 엿보다





책 마다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을 얼마나 잘 잡아내느냐에 따라 책의 가치는 달라진다. 십여 년 전 논어를 읽었다. 평생에 한 번은 읽어야할 인문학의 필독서. 아니 한 번이 아닌 두고두고 재차 읽어야할 책이 논어다. 그러나 처음 논어를 접할 때의 느낌은 맹물처럼 아무런 맛도 향도 없었다. 나의 지적 상태는 아직 논어를 읽을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다시 작년, 논어를 읽었다. 논어는 대양(大洋)과 같아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지만, 무지몽매한 나 같은 이들도 많은 깨우침을 받을 수 있기에 충분했다. 동일한 논어지만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짐짓 놓치기 쉬운 부분을 잘 다듬어 보여준다면 책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작년에 독서 모임 중에 한 책을 두고 서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책인데, 열 명 모두가 다르게 보았다. 그리고 각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 이야기는 획일 된 나만의 관점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좋은 책을 더 좋게 풀어내고 보여줄 수 있다면 책 읽는 재미는 분명 더해질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하세가와 히로시의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도 그런류의 책이다.

 

저자인 하세가와 히로시(長谷川宏)는 특이한 분이다. 1940년생이다. 45년에 광복이 찾아 왔으니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 일본 최고의 대학인 도쿄대학 문학부와 철학부를 졸업했고, 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그 뒤 취업하지 않고 헤겔 연구에 몰두하며, 헤겔의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는데 매진한다. 번역뿐 철확 입문서과 소개서도 펴냈다. 벌써 일흔이 넘은 나이인데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이다. 이 책은 자신의 철학적 소양이 충분이 스며있고, 문장력 역시 일반작가보다 뒤 떨어지지 않는다. 번역한 조영렬도 고려대 국어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일어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분이다. 그래서 인지 전문적인 용어에서도 허투루지 않게 깔끔하고 명확한 용어 사용이 돋보인다. 무리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자 그럼 책으로 들어가 보자.



철학자의 눈으로 본 인문학 서적 15권이다. 다섯 가지의 주제로 분류했다. 인간(人間)에서 알랭의 [행복론],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골랐고, 사색(思索)이란 주제로 플라톤의 [향연]과 공자의 [논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골랐다. 막스 베버의 책을 사색이란 카테고리에 묶은 것은 조금 의외이다. 사회(社會)에서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마지막으로 도스트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골랐다. 네 번째 주제는 신앙(信仰)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파스칼의 [팡세],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살펴본다.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좌파 계승자이며 막스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나 인간에 넣어야 마땅할 책인데 하세가와는 신아에 집어넣었다. 아마도 종교의 일본식 표현이 신앙(信仰)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미(美)-아름다움이란 주제로 선정했다. 이곳에서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 비트겐슈타인의 [색채에 관하여],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을 골랐다. 철학자라서 그런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형태의 구분법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더욱 궁금하고, 책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궁금하다.

 

“이십대 어간에 알랭을 자주 읽었다.” 알랭의 <행복론>을 소개하는 저자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 묘한 자극을 준다. 하나는 나는 이 책을 통해 ‘알랭’이란 존재를 처음 알았고, 나의 이십대 어간에 책은 거의 읽지 못했다. 그만큼 저자는 나보다 훨씬 빨랐다. 번역도 극적이다. ‘어간’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다.

 

어간1 (於間)

[명사] 시간이나 공간의 일정한 사이.

 

번역이 탁월하다. 그래서 인지 번역글이란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알랭은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허나,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이 행복해지는 것을 막을까? ‘정념(情念)’때문이다. 알랭의 이러한 분석은 결국 행복은 환경적 조건이 아닌 개인의 내면적 이유 때문으로 몰고 갈 것이다. 역시 그랬다. 치밀하게 개인에게 집중함으로 불행을 ‘나의 문제’로 제한시킨다. 여기서 알랭은 불교적 초월주의로 넘어간다. 아니면 중세적 금욕적 신비주의일 수도 있고. ‘상대의 심정에 강하게 공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알랭은 말한다. ’남은 남, 나는 나‘라고 거리를 두는 방식이 이치에 맞는 기본자세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알랭은 행복. 불행의 문제는 오직 ‘나’라는 개인의 문제로만 보았다.

 

사색의 주제로 묶은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나도 두 어번 읽은 책이다. 번역이 깔끔했던 기억이 아물거리는 책이다. 저자가 간파했던 이 책은 자본주의 정신을 만든 것은 종교개혁, 특히 칼뱅주의라고 말한다. 모든 만물은 신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물질관, 경제관, 정치관에도 여실이 드러난다. 베버는 칼뱅의 종교개혁 사상에 있는 신관(神觀)에서 16-17세기 유럽 자본주의 정신이 키워졌다고 말한다.(94쪽)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가는 것은 신의 시대에서 ㅇ인간의 시대로 옮겨 가는 것이다.’(95쪽) 막스는 칼뱅주의가 가진 초월적 신관으로 인해 결국 신을 보던 시선(視線)이 인간에게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 조금 모호하다. 필자도 성경을 알고 교회사를 일지만 저자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후에 더 공부해야할 과제인 듯싶다.

 

사회라는 주제에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가장 앞으로 끄집어 것은 잘한 것이고 중요하게 다룬 것 역시 잘한 것이다. 사회계약론의 시작은 ‘일반의지’다. 일반의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의지라고 설명하면 될까? 루소는 그것을 인간의 욕망이나 선택의 판단 동인(動因)으로 본다. 그 욕구는 ‘개인적인 사정을 넘어선 지점에 있’고, ‘어떻게 서로 도우며 살아갈까, 그것을 고려하며 행동하려 한다. 그것이 일반의지다.’라고 말한다. 즉 ‘일반의지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지탱하는 토대인 동시에, 공동생활의 활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루소는 인간은 서로 합의하에 역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사회계약을 지탱하는 두 기중은 자유의 원리와 평등의 원리다. 정부는 가변적이며, 피동적이다. ‘기댈 것은 역시 일반의지’뿐이다.(117쪽)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지 않고 이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내용도 좋고, 번역도 깔끔하다. 개인적으로 역자가 후기에 남겨둔 하세가와의 헤겔강독 이야기는 독서모임을 꿈꾸는 이로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인문학 관련 서적이 많이 나왔지만 이번 책은 단연 압도적이다. 소개되는 책을 이해하는 것도 좋고, 하세가와 히로시의 추론과 논리력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분에게 강추!합니다.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국내도서
저자 : 하세가와 히로시 / 조영렬역
출판 : 교유서가 201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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