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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일반서적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

by 하늘땅소망 2015. 8. 18.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

장영희 쓰고 김점선 그림/비채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사랑, 장영희 교수에게도 사랑이 있었을까? 참으로 무례한 질문이다. 이미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는 '희망'의 전도사였다. 장애의 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문학박사 학위를 손에 넣기까지... 다시 한국에 돌아와 교수의 자리에 앉기까지. 장애인 박사를 교수로 채용하는 학교는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았다. 다행히 서강대에서 그녀를 교수로 받아들였다. 고마운 학교다.

 

내가 처음 장영희 교수를 안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인문학에 관심 갖기 시작하면서 인문학 책을 소개한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부터다. 글이 너무 좋았다. 장영희 교수에게 흠뻑 빠져 장영희 교수의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장영희 <내 생애 단 한 번><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내 생애 단 한번>도 구입했다. 몇 달 전 장영희 교수의 영미 산책인 <생일><축복>을 추가로 구입했다. 장영희 교수의 글은 감동이 있고, 희망적이다. 망상이 아닌 현실에 뿌리내린 일상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작가다. 이 책 역시 장영희 교수의 감동스런 문장이 씨줄처럼 엮여있다.

 

"<생일>은 제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책입니다. 20049월 초 척추 암이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했던 저는 당시 쓰고 있던 신문과 잡지 칼럼 내 개 중 세 개를 포기했지만, 그 중 영미시 칼럼만은 남겨두었습니다. ... 그 당시 제게 '영미시 산책' 칼럼은 흰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단 하나의 통로였습니다."

 

머리말에 있는 장영희 교수의 글이다. 병색이 깊어져 가고 삶의 소망의 끈이 조금씩 약해져 갈 때조차도 놓지 않았던 글이다. 자신을 '버려두고 자꾸자꾸 앞으로 가버리는 세상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단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렇게 쓴 120편 가량의 글에서 49편을 골란 <생일>이란 제목을 붙여 한 권에 담았다.

 

생일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 마음은 물가의 가지에 둥지를 튼

한 마리 노래하는 새입니다

내 마음은 탐스런 열매로 가지가 휘어진

한 그루 사과나무입니다.

내 마음은 무지갯빛 조가비,

고요한 바다에서 춤추는 조가비입니다.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다. 스물일곱 살 때 썼다는 이 시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존재로 거듭나게 함을 일러주는 시죠. 무료한 하루가 어느 날 갑자가 찾아온 사랑 때문에 폭풍이 일어나고 요동치며 존재의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삶에도 사랑이란 것이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고 소중한 기억들이다.

 

냉철한 논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에게 사랑이 찾아왔고 논리와 의지를 초월해버린 감정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시는 상징이다. 고요한 바다라는 일상에서 홀로 춤추는 작은 조가비로 살아갑니다. 장영희 교수는 이 시를 '누군가 내게 불쑥 내미는 화려한 꽃다발 같은 시'라고 말한다. '불쑥'... 불청객처럼 찾아온 사람은 고요한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그러나 감정이 앞서면 실수가 많은 법이다. 때론 언성이 높아지고 때론 묵묵부답이고, 때론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씻을 수 없는 상처의 말도 쏟아냈다. 날카로운 말이 만들어낸 상처는 의외로 오래간다.

 

결혼한 지 벌써 14년이 흘렀다. 첫 아들이 말만은 중2.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사랑은 더 깊어진다. 여전히 틱틱거리고 잔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행복은 더 풍성해진다. 어제 아내가 입원했다. 단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은 아내가 없는 방에서 흘렸다. 사랑은 표현하지 않아도 아는 법이다.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십상이다. 아직 아내에게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사실을 '불쑥 내미는 화려한 꽃다발'처럼 선물로 주고 싶다.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세트 전2권 - 생일,축복
국내도서
저자 : 장영희
출판 : 도서출판비채 200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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