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Note/설 교

뜻밖의 회심 / 행10:44-48

by 하늘땅소망 2015. 6. 17.
반응형

뜻밖의 회심

10:44-48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하나님 앞에 드린 작은 헌신과 결단들이 너무 작고 미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마치 오병이의의 기적 앞에서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찾아와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베드로와 같은 회의에 빠진 적은 없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럼 오늘, 그 작은 헌신과 순종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사도행전 10장은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집에서 행한 설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10:44-48까지는 설교 이후 일어난 성령강림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고넬료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입니다. 고넬료의 회심과 성령강림사건은 지금까지 초대교회가 가진 틀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직후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8:4-8) 8:14절에 보면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성경 받기를 기도함으로 정말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8:14-16)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건은 뜻밖의 사건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유대인들이었고, 구약성경 중 모세오경을 공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지는 다르지만, 뿌리는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원수 같은 사이였지만, 다른 한 편으론 친척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사건이 8:26-40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특이한 일이지만, 에티오피아 내시는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음으로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고넬료 사건은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10:44-45을 보면 베드로가 설교하는 중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고, 심지어 46절에서는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의 높임을 말했다고 증언합니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는 곧바로 그들에게 세례 주라고 명령합니다. 왜 그들은 놀랬는가? 지금까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사건은 오순절 성령이 유대인들에게 임했던 모습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방언과 하나님 높임은 성령강림의 특수한 사건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찾아 가셨습니다. 낙심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의심 많은 도마에게, 목적을 찾지 못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버린 제자들에게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40일이 되던 날 주님은 제자들이 보이는 곳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부활 후 40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0동안 제자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부활 후 7주가 지난 그 다음날인 50일째 되는 날, 그러니까 주일 아침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날과 성령이 임한 날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날이고, 죽음이 지배하던 아담의 역사가 끝이 나고, 새로운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에게 두 가진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하나는 방언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먼저 방언의 역할입니다. 방언은 소통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인 바벨론 포로 이후 전 세계에 흩여져 살았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알렉산더에 의해 전 세계가 통일 되면서 어느 곳으로 마음대로 이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예루살렘을 찾기는 했지만, 언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음으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많은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강림을 통해 그들이 여러 언어로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놀라움을 참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어가 소통됨으로 그들은 동일한 언어를 통해 정확한 뜻과 의미를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방언은 벽이 무너지고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 도중에 성령이 임함으로 그들에게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에게 행한 방언이 그들에게도 일어나자 그들은 놀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받아 준 것처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 주었다고 확신하기에 이렀습니다. 고넬료의 회심 사건은 이후에 큰 논란거리가 됩니다. 초대교회를 뒤흔들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1장을 보면 예수님의 승천 이후 최초로 공의회가 열려 고넬료 사건을 다루게 됩니다. 그것은 이방인에게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는가.’였습니다. 전통에 얽매인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잘못은 지적하며 비판했습니다.(11:1-2)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에게 일어나 환상과 사건들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1:16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이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행전 1:4-5로 돌아가 봅시다.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성령이 이번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을 깊이 묵상하지 않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뜻밖이고, 우리의 생각으로 의외이며, 우리의 눈에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 일은 이미 오래 전 약속되었고, 이루기를 간절히 원하셨으며, 때가 되면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고, 적당한 때에 글을 성취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는 기도 시간에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환상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세 번이나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율법적 지식과 상식을 우선했습니다. 지금 일어난 일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웠던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경험은 철옹성과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우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의 모험을 하기보다, 나의 생각과 경험에 사로잡혀 그곳에 안주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만약 초대교회가 자신들 앞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무시하고 눈 감아 버렸다면 사도행전 13장부터는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직시하지 못했지만, 지금 초대교회는 중요한 시기에 돌입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조금 후에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땅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땅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성경적 인식과 편협한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넘지 않고서는 결코 바울은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멀리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고, 나를 통해 하시고자하는 일에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복음화 시킬 수는 없습니다. 내가 38만이나 되는 사하구 전체에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 가족, 내 이웃, 내가 사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내가 회심 시킬 수도 없고, 내가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복음전할 수 있습니다.

 

 나비효과

MIT공대 기상학자였던 로렌츠는 천체의 미세한 운동까지 정확하게 측정하는 현대과학이 날씨 하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무엇이 그렇게 하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습도, 온도, 바람 등 기상을 좌우하는 변수들을 컴퓨터에 입력한 다음 변수들 마다 값을 1/1000씩 다르게 입력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습도와 바람의 값을 조금만 높였는데도 브라질에서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하던 바람이 미국의 텍사스에 도착할 때는 토네이도와 같은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로렌츠는 이 연구를 나비효과라 명명하고, 초기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정도의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728x90
반응형

'BIble Note > 설 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서 설교 계획  (0) 2017.05.05
장례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1) 2017.04.28
뜻밖의 회심 / 행10:44-48  (0) 2015.06.17
[설교] 지금까지 지내 온 것 눅22:24-34  (0) 2014.12.24
[설교] 엠마오의 성만찬  (0) 2014.11.29
요셉의 죽음 (창50:15-26)  (0) 2014.11.05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