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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국민일보

[기독교 고전 다시 읽기 5] 「웨이크필드의 목사」

by 하늘땅소망 2015. 2. 16.
[기독교 고전 다시 읽기 5] 「웨이크필드의 목사」

로고스서원 연구원이자 다독가이신 정현욱 목사님(부산반석교회)이 새해를 맞아 다시 ‘기독교 고전 다시 읽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웨이크필드의 목사
올리버 골드스미스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262쪽 | 7,500원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신화 속에 있던 트로이 발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그는 외국어 학습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스어를 6개월 만에 듣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습득했다고 한다. 수십 개국의 언어를 불과 수 년 만에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가 사용하는 학습법은 매우 단순한데, 소리 내어 읽고, 해석하지 않고, 통째로 암기한다고 한다. 그는 번역하지 않고, 외국어를 그 나라의 언어로만 이해하려고 했던 특이한 사람이다. 독일인이었던 그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웨이크필드의 목사>와 스콧의 <아이반호>를 통째로 암기했다고 한다. 그의 외국어 학습 방법은 일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가장 탁월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많은 책 중에서 하필이면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웨이크필드의 목사>를 선택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만큼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기 때문이다. 해설을 쓴 최종수 교수는 괴테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이 정신 발전의 위기에 처한 나에게 끼친 영향을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저 고상하고 자비심 깊은 풍자, 모든 약점과 실수에 대한 공평하고도 관대한 태도, 온갖 곤경을 겪으면서도 잃지 않았던 저 온순함, 어떠한 환경 및 운명의 변천에도 버리지 않았던 저 마음의 평정, 기타 무슨 명목으로 부르든지 이와 유사한 많은 미덕은 나에게 비할 바 없는 교육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것들은 인생의 모든 과오에서 나를 구출해 주었던 사상이며 감정인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국민적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스코트, 19세기 영국문학사의 불명의 시인 윌리암 블레이크 등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문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 분명하다. 이 정도의 극찬이라면 충분히 암기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어떤 내용이기에 그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을까?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프림로즈 목사는 유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격이 쾌활하고 인자하다. 목사 사례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덕에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가정도 화목하고, 여섯 명의 자녀들은 흠 하나 없을 만큼 귀한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영국에서 가장 행복하고 모범적인 인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커다란 시련이 불어온다.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던 상인이 파산하게 되어 모든 재산을 한순간에 잃어버린다. 적은 사례금만으로 생활할 수 없어, 다른 지방으로 옮겨 목사직과 더불어 소작인의 삶을 살아간다. 새로 이사 간 마을에 쏜힐이라는 지주가 있었다. 그는 품행이 불량하고 마을 처녀들을 유혹하는 사악한 남자였다.

프림로즈 목사의 가정이 이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딸 올리비아가 쏜힐의 눈에 들어온다. 심성이 착하고 미모가 탁월했던 올리비아는 쏜힐의 유혹에 넘어가 유린당하게 된다. 자신의 분수를 알았던 프림로즈 목사는 지주인 쏜힐과 자신의 딸이 자주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와 딸들은 도시의 화려함과 돈의 유혹에 이끌려 쏜힐에게 환심을 사려 하면서 많은 실수를 거듭하게 된다. 프림로즈 목사는 딸을 윌리엄스라는 농부 청년과 결혼시키려 하지만, 결혼 당일 쏜힐은 올리비아를 유괴하여 가짜 목사의 집례 하에 비밀 결혼식을 치르고 행방을 감춘다.

목사는 둘째 딸인 소피아를 좋아하는 가난한 신사 버첼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주막에서 만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버첼의 누명이 벗겨지고, 쏜힐이 범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쏜힐에게서 도망쳐 주막에 피신했던 올리비아를 데리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지만, 집은 불타고 있었다. 불 속에서 두 아들을 구하면서 자신을 화상을 입게 된다. 가족들은 조그만 통나무집으로 옮겨 이웃의 도움을 받고 겨우 연명한다.

그럼에도 프림로즈 목사는 환난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감사와 평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쏜힐이 다시 찾아와 올리비아를 정식 아내로 허락해 달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겠다고 하자, 그를 고소하고 만다. 프림로즈 목사는 빚을 갚지 못해 옥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그는 여전히 실망하지 않고, 다른 죄수들에게 설교하며 옥중 생활을 참고 견디라고 격려한다.

프림로즈 목사가 쏜힐의 모략에 넘어가지 않은 채 끝까지 옥에서 버티자, 아내는 프림로즈 목사에게 거짓으로 올리비아가 죽었다고 알린다. 그는 옥에서 딸의 죽음을 맞이하고 비통에 젖는다. 설상가상으로 군인이 된 아들 조지는 여동생 올리비아가 쏜힐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쏜힐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나 쏜힐의 부하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그도 아버지가 있는 옥에 갇히게 된다. 잠시 후 딸 소피아가 악한들에게 납치당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프림로즈 목사는 삶의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작가는 여기서 프림로즈 목사의 옥중 설교를 한 장에 걸쳐 싣는다. 그는 이 세상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아 보이고 행복하기보다 불행하게 보이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인도하실 것을 믿으라고 권한다. 이 설교가 끝나자 소피아를 좋아했던 버첼 씨가 찾아오면서 모든 것이 역전된다. 버첼 씨야말로 쏜힐의 삼촌이자 많은 세력과 큰 권력을 갖고 있으며, 모든 국민의 벗인 동시에 국왕의 충신이었던 윌리엄 경이었다.

마치 욥기를 읽는 것 같다. 순수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하지 않았던 프림로즈에게 어느 날 불어닥친 고난은, 그를 고난의 늪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림로즈는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의탁한다. 욥기 마지막에 나타난 하나님처럼, 프림로즈 목사는 버첼 씨의 등장으로 모든 오해를 벗고 예전보다 더 화려한 삶으로 복귀한다.

저자인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아일랜드인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천성이 게으르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다 46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2년 동안 유럽 여행을 하며 걸인의 모습으로 런던으로 돌아간다. 그는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보조약제사, 학교수위, 의사 등을 하면서 문필생활을 시작한다. 얼마 후 수필집 <세계의 시민>을 출간하면서 일약 유명인이 된다. 2년 후인 1764년에 시집 <나그네>를 발표하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유명세를 타자 그는 심한 낭비벽을 가지게 되었고, 도스트예프스키처럼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써야 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자신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프림로즈 목사를 주인공으로 앞세웠을까? 그는 불행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다녔던 학교 교장은 그에게 ‘멍청한 돌대가리’라고 비아냥거렸고, 대학에서도 학년 꼴찌로 졸업할 정도로 성적이 형편없었다고 한다. 초기에 목사가 되려고 알아보았으나 자신의 성격과도 너무 달랐고, 목사 안수도 받지 못했다. 법학에 도전했으나 다시 실패했고, 의학 분야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단하고 말았다.

청년 시절 내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먹을 것도 없어 자신의 옷을 전당포에 맡길 만큼 힘겨운 생활을 했다. 젊은 시절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없는 실패와 갈등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다 글쓰기와 번역을 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계속하여 글쓰기를 하여 자신만의 필체를 계발해 나갔고, 결국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처럼, 프림로즈 목사는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자화상이자 이상형이다. 그는 비록 자신은 성공으로 인해 순수함을 잃고 문란한 삶을 살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영악한 지혜보다 순수한 어리석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옳다고 말한다. 프림로즈 목사는 순수하지만 어리석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쏜힐과 여러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지만, 악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돌보신다고 확신했다.

소설은 돈과 이성이 신이 된 18세기에 목가적 삶을 이상으로 삼고, 악한 지혜와 합법적 착취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정죄한다. 또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친구와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모의 훈계를 거절하고 사랑을 쫓아가다 폐인이 되어 돌아온 딸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와 오버랩된다. 도덕적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예의범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권위적 아버지였지만, 자비와 사랑도 많았다.

마지막은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옛 관습대로’ 전체가 난롯가에 모여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은 사소한 일상에 있다. 소설 초반부에서도 소소한 가정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단란한 가정’이야말로 행복의 조건임을 넌지시 일러 준다. 처음 가졌던 일상의 행복을 갑자기 잃어버린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치 않는다면 결국 더 큰 복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고난은 필요악(必要惡)이 아니다.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며, 하나님의 복을 가져다주는 위장된 기회이다.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불평과 낙망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프림로즈 목사는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얘들아. 그들이 아무리 타락했다 해도 틀림없이 인간은 인간이야.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충고란 거절을 당했을 때 그 충고자들에게 다시 돌아와 그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란다. 내 교훈이 그들을 교화시키지는 못한다 해도, 내 자신을 유익하게 해줄 수는 있겠지?”

▲정현욱 목사.

희망을 놓지 않았던 웨이크필드의 목사는 불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절대 절망의 시기에 절대 희망을 가졌던 웨이크필드의 목사, 하인리히는 그 목사를 온전히 자신 안에 담고 싶어 이 책을 몽땅 암기했는지도 모르겠다.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단어가 ‘소망’이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향하여 ‘그래도 교회가 소망이다’는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웨이크필드의 프림로즈 목사처럼 부족하고 흠 많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결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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