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회칼럼

[중고등부칼럼] 읽기의 혁명성

by 하늘땅소망 2014. 8. 23.
반응형

[중고등부칼럼]

 읽기의 혁명성


읽는 자는 불온하다. 종교의 자유를 통제하고 시민의 정식을 억압하려 했던 왕들은 철저하게 읽기를 불온(不穩)화 시켰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도 역시 동일했다. 교황은 루터의 개혁적인 문서를 금서(禁書)로 지정하고 일반 사람들이 종교개혁의 정신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쿠테베르크에 의해 발명된 인쇄술 덕분에 루터의 서적들은 온 유럽에 급속하게 퍼져갔다. 사람들은 루터의 책을 읽고 종교개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루터는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어려운 언어로된 성경을 독일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했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열었다.


읽기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고도의 정신적 노동이며, 적극적 사유의 방편이다. 모티머 애들러는 <독서의 기술>에서 수동적인 독서는 없다고 말한다. 읽으면 이해하기위해 생각 해야 하고, 여러 주제들은 한 가지로 통합하려는 정신적 과정을 겪게 된다. 수용하는 과정은 생각과 사고의 패턴을 만들어내고, 결국 그 책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읽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고, 행동하는 대로 삶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치고 깊이 있는 책을 읽는 사람은 없다.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책을 읽는 사람치고 막무가내로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적다. 친구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듯 책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읽기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주고, 결국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적 주체이다.


고대 이스라엘 왕들은 반드시 율법책을 곁에 두고 종종 읽어야한다고 명시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다른 생각이 들어오고, 결국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된다. 인간은 갈대처럼 약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은 사유(思惟)하는 인간이야 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읽지 않는 자는 시대의 정신에 함몰(陷沒)되어 타락하기 마련이다. 읽는 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읽기의 혁명성이다. 그러므로 읽어라.







728x90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