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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칼럼] 얼토당토않다

샤마임 2014. 4. 26.

[중고등부칼럼]

얼토당토않다


‘얼토당토않다.’는 말이 있다. 이치에 전혀 맞지 않거나 상관없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경비병들이 보았고,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작당하고 숨기려 했다.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어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거짓말하게 한다. 경비병들은 돈에 매수되어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퍼뜨렸다.


성경은 그들이 퍼뜨린 거짓말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전통이 된 것이다. 누가 반문할 것인가? 권력으로 억압하고 돈으로 매수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명백한 진실 앞에 거짓을 말할 수 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엄청난 기적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고, 심장을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현실은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그러나 부활은 제자들의 영혼 속에 뜨거운 분을 내렸다. 십자가에서 죽은 지 딱 50일이 되던 날 하늘이 열리고 뜨거운 불이 내렸다. 그제야 그들은 용기를 되찾았고, 박제된 신앙을 부수고 일어나 진리의 파수꾼이 되었다. 침묵을 깨고 분연히 일어나 ‘너희들이 예수를 죽였다고’고 외쳤다. 여전히 대제사장들은 제자들을 붙잡고 위협하고 죽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주님은 부활했고,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다.


부활은 취소되지 않는다. 부활은 한 수 무를 수 있는 장기도 아니다. 부활은 죽음의 역사를 전복시키고 생명의 역사를 도래시켰다. 예수님은 이제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여전히 유대지도자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지만 세상은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의 시대로 변하고 있었다.


여전히 언론을 조작하고 증인들은 억압하고 위협하는 그대들이여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얼토당토않다. 왜냐고?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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