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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기독교인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샤마임 2014. 1. 4.

기독교인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지금까지 거의 들어보지 않는 질문이다. 그러나 늘 궁금해 하고 도움을 받고 싶은 주제이다. 독서(讀書)가 죄악시된 현대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꿈결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기독교는 ‘그 책’의 종교다. 보물처럼 여기는 성경(聖經)도 책이다. 성경 없이 기독교 없고, 기독교 없이 참 진리 없다. 그러므로 책을 읽다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올바른 진리에 다다르는 최고의 수단이다.

 

독서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일반 독서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전과 철학, 베스트셀러를 읽어야할까. 나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라는 특별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독서의 목적 역시 일반 지식이나 교양을 이한 수준을 넘어 종교성을 함양하고 진리를 더 깊이 알아 가려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독서는 지적 능력을 배양하고, 교양을 아우르며, 신앙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1. 성경을 읽어라.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말하면 성경은 최고의 독서 목표이자 목적이다. 성경을 읽지 않고 다른 책을 읽는다는 것을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독서는 성경을 읽는 것이다. 다른 도서들은 참고서적으로 여겨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며,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읽을 수 있다. 다른 책 수천 권을 읽는 것보다 성경 한 권을 읽는 것이 더 좋다.

 

성경을 꾸준히 읽고, 여러 번 읽고, 깊이 읽어야 한다. 시편1편에 나오는 의인처럼 성경은 영혼의 생수와 같아서 오랫동안 묵상하고 천착(穿鑿)하여 읽어 나가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된다. 성경은 모든 독서에서 우선순위며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러니 반드시 성경을 읽어라. 그렇지만 성경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성경을 더 풍성하게 이해하고 깊게 이해하려면 일반서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럼 어떤 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2. 역사서를 읽어라.

 

오스카 쿨만은 ‘그리스도의 시간’에서 순환론적 시간이 아닌 직선적 시간관이 기독교 시간관이라고 말한다. 창조에서 종말까지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직선적 역사관을 이해야 올바른 기독교관을 가질 수 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일터이다. 영원한 하나님은 시간 속에서 일하신다.

 

성경도 역사를 다룬다. 역사 없이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의 틈 속에서 일어난다. 구속은 필연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의 전환을 가져 온다. 대개 교회사와 일반사를 나누지만 옳지 못하다. 일반 역사는 하나님이 일반은총의 영역(領域)이면서 하나님의 섭리(攝理)의 수단이다. 국가의 흥망성쇠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고 이루신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3. 철학사를 읽어라.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는 곧 정신의 흐름이다. 사유의 변천(變遷)과 변환을 통해 역사의 전환점(轉換點)이 만들어 졌다.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국가와 생겨 나기도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다만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개략적인 철학사만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철학 고전 몇 권이나 철학사 개요 등의 간략한 역사를 다룬 책을 추천한다.

 

4. 기독교 고전을 읽어라.

 

성경 다음으로 읽어야할 책이 기독교 고전이다. 기독교 고전은 하나님과 깊은 영적 체험을 경험한 이들이 기록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십년동안 고민할 것도 한 권의 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이나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의 ‘프로슬로기온’의 경우는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깊이 더해 준다. 모두들 고전에 대한 두려움 내지 공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전을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존 번연의 ‘천로역적’이나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경우 현대 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고전은 말 그대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책이다. 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하여 읽혀지고 있을까를 고민해 보자. 필요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의 경우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입에 오르고 사라진다. 한 때 지혜롭다고 여겨지던 책들이 시대가 변하고 관점이 변하자 쓸모없어진 것이다. 깊이가 없어서이다. 이에 비해 고전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역경과 위기 속에서 더욱 필요로 한다. 심오한 통찰력과 깊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고전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죽기 전에 기독교 고전 100권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5. 신문을 읽어라.

 

마지막으로 권하는 것은 신문이다. 신문은 빠르나 부정확하다. 또한 신문사마다 관점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비평적 사고로 읽어야 한다. 한 예로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극과 극의 관점에서 기사를 내보낸다. TV는 권하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감정적이고, 단순하다. 나도 TV 뉴스를 보지 않은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아무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결론

 

신앙은 무시간적 신비주의가 아니다.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뿌리내리는 나무와 같다. 지금 당장 필요를 채워야 하고, 오래전 전통에서 영양분을 흡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일반 경건 서적들도 종종 읽어야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바라보게 한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왕이신 예수만이 전부가 아니다. 누가복음에서처럼 한 인간으로, 종으로 계시 하신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다양한 사람의 관점과 경험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진실하고자 하는 자, 반드시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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