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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 인간폐지(The Abolition of Man 1943년)

샤마임 2013. 12. 12.

인간폐지(The Abolition of Man 1943년)

C. S. Lewis  / 이종태 옮김 / 홍성사




C. S. Lewis의 글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지금까지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거나 큰 변화를 준다. 이번 책도 어김없이 '충격'을 주었다. 절대 가치는 없다는 논리만을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상대주의와 주관주의 모순을 파헤쳐 우상화된 인간의 교만을 들추어낸다. 지금까지 절대가치를 두었던 도덕률을 폐기하고 오직 개인의 즉흥적 판단만을 허용하려는 이들에게 냉혹하리만치 예리한 논리로 공격한다.

 

1943년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영국 더럼 대학에서 행한 리델Riddell 기념 강연의 연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 모두 세 개의 강연이다. 1. 가슴 없는 사람. 2.도. 3.인간폐지. 4.도의 실례 마지막 4장인 도의 실례는 루이스의 강연에서 인용된 책과 참고할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좋다. 루이스가 무엇을 말하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장 가슴 없는 사람에서 가이우스Gaius(가명)와 티티우스Titius로 불리는 이들이 저술한 ‘녹색책’에 나오는 논리를 파고든다. 여행자 두 명이 폭포를 보며 말한다. 한 사람은 ‘장엄하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볼 만하다’고 말한다. 티티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저것은 장엄하다라고 말할 때, 언뜻 보기에 폭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폭포에 대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인용하자.

 

루이스는 ‘가이우스와 티티우스가 범하고 있는 단순한 오류부터 바로잡’(13쪽)는다. 그들이 논리는 이렇다. ‘첫째, 가치 술어가 들어있는 문장은 실상 그 화자의 감정 상태를 진술한 것이다. 둘째, 그러한 모든 진술은 중요하지 않다.’가 된다. 루이스가 토를 다는 것은 폭포가 장엄하다는 표현을 단순한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며, 또한 그 표현이 개인의 감정이기에 중요하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은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폭포의 장엄함을 보고 ‘장엄하다’고 말하는 개인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폐지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그리고, 무엇이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음에 대한 판단 기준이 사라질 뿐 아니라, 그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19쪽)이다. 그들은 초등학생들이 아름답다고 표현한 자유를 파기시키고,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오류를 가지게 된다.

 

가슴 없는 사람이란 바로 감정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가슴 없이 지성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지성은 훈련된 감정의 도움 없이는 동물적 유기조직에 맞서기에 무력’(33쪽)하다. ‘머리는 가슴을 통해 배를 다스’(33쪽)린다. 지성과 감정과 행동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가슴 없는 사람들이 마치 지성인인 양 불리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34쪽)이다. 그러므로 폭포를 보고 장엄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으며, 정당하다.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인간이야 말로 멋진 인간이다.


1장을 살피는 것으로 루이스의 논지를 충분히 따라 잡았다고 믿는다.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의 평을 잠깐 들어보자. 맥그라스는 1932-1942년을 루이스의 전성기로 잡았으며, 최고의 찬사를 받은 ‘전국적 찬사’로 명명한다. 거기에 ‘전시(展示)의 변증가’를 덧 붙였다. 2차 대전이 발발함으로 루이스는 입대를 해야할 처지였으나 다행해 몇 가지의 일로 빠지게 된다. 전시상황이 연이어 일어나자 영국은 혼란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 진다. 철학사의 흐름을 보면 이 때를 기점으로 인간의 무의미를 강조하던 실존주의가 급물살을 타고 전유럽과 미국을 휩쓴다. 실존주의는 또 다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또 다른 친구를 부른다.

 

상대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권위와 근거에 기반을 둔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배타적 교리에 종속된 이기주의자로 몰아간다. 루이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몇 단체들의 초청을 받으면서 기독교 변증가로의 변신이 시작된다. 이러한 변신의 주역은 1940년에 출간된 ‘고통의 문제’이다. 맥그라스는 이 책을 루이스가 출간한 ‘기독교 변증서’로 규정한다. 전시 강연으로 유명한 런던의 브로캐스팅 하우스에서의 강연을 시작한다. 후에 강연을 모아 책으로 펴내어 두 번째의 변증서를 출간한다. 이 책이 바로 20세기의 최고의 변증서로 군림했고, 아직도 그 명성이 깨지지 않는 <순전한 기독교>(1952)다.

 

인간폐지는 이러한 전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를 옹호하고, 기존의 인류가 지켜온 전통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아이를 목욕한 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폐지는 ‘모든 가치 진술은 그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이 아니라,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주관적인 진술에 불과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비판’(맥그라스 303쪽)했다.

 

마지막으로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폐지의 결론을 내려보자.

 

“현대 과한 운동은 출생시부터 오염(汚染)되어 있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되겠습니다만 그 운동(運動)은 건강하지 못한 이웃 가운데서, 또 불운(不運)한 시간에 태어났다고는 볼 수 있습니다. 그 운동은 너무 빨리 승리를 거두었고 또 너무 큰 대가(代價)를 치렀습니다. 이제는 근본적(根本的)인 재고(再考), 일종의 회개(悔改)가 요구되는 시점(始點)에 이르렀습니다.”(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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