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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라 본문 마 6:9-15

샤마임 201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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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설교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라

본문 마 6:9-15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를 보내며 마무리하는 가을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열매는 있는지요?

 

가을이 어떻게 오는 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가을은 공짜로 오지 않습니다. 수고와 대가를 지불해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농부는 종자를 꺼내어 물에 담그고 소독을 하고 발화(發話)를 시킵니다. 못자리를 만들어 씨를 뿌립니다. 여름이 오기 전 모내기를 하고 논에 물을 가득 채웁니다. 어느 정도 뿌리가 내리면 물을 완전히 빼고 논바닥을 바짝 마르게 합니다. 그래야 뿌리가 깊이 들어갑니다. 뿌리는 내리면 다시 물을 가득 채웁니다. 7월이 시작되면 벼이삭에서 꽃이 피기 때문에 물과 양분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마치 임신하면 산모에게 맛있는 것을 풍성하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농부는 김매기를 시작합니다. 피를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 영양분이 다른 곳으로 허비 되지 않고 오직 나락에게 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가을이 시작되면 태풍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꽃이 피어 있는 상태에서 강한 바람을 맞으면 알이 차지 않고 쭉정이가 생기기 일쑤입니다. 특히 늦여름에 생기는 멸구는 벼에 치명적입니다. 농약도 잘 뿌려 주어 벼를 건강하게 합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고개를 숙인 벼가 쓰러집니다. 가족이 총 동원하여 벼를 묶어 썩지 않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드디어 추수를 합니다.

 

추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겨울이 오면 땅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거름을 뿌리고 황토를 잔뜩 뿌려 ‘복토작업’을 해주고, 내년을 기약합니다. 아! 가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맞습니다. 가을은 울어야 합니다. 잠 못 이룬 밤과 추위와 더위를 견디어내며 돌본 수많은 시간들이 축적된 후에 풍성한 가을은 여물게 오는 법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면서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오늘 본문은 광야라는 환경에서 읽어야 합니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광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를 지났습니다. 광야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없는 공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지키시고 입하시기 위하여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만나는 ‘내가 너희를 돌봐주고 책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건이었습니다.

 

만나는 매일 내립니다. 쌓을 수 없고, 모아 둘 수 없습니다. 주일이 아닌 이상 하루만 지나도 썩고 맙니다. 만나는 그들을 육신적으로 먹이기 위한 목적으로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매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니 감사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양식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매일 내리고, 우리의 양식도 매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구해야 합니다.

 

작년 수련회 때 받은 은혜를 날마다 우려먹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육신, 우리의 가정, 우리의 회사는 날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는 본문을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과 경제적인 필요와 영적인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고백을 매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생활 방식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매일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주 예배 때 받은 감격을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아니, 심지어 몇 년 전 부흥회 때 받은 감격을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썩은 만나입니다.”(김형국,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230쪽)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발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체험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언제나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일 년에 한 번이 아닙니다. 매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주님의 첫 번째 의도입니다.

 

두 번째 의도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이 시작하기 바로 앞 본문을 보면 이방인의 기도와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충고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다음 구절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가 아주 익숙한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구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은 6장이 끝나는 부분인 32절에서 다시 비슷한 말씀으로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내용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사정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애써 구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린 여기서 중요한 모순을 만납니다. 우리의 필요와 사정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왜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시는가입니다. 첫 번째 답은 앞서서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의 양식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리차드포스터는 <기도>라는 책에서 힌트를 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기도를 통해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들의 의미를 바꾸어 놓으셨다. 만일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내용이, 중대한 문제들이나 중요한 것들, 그리고 심각한 문제에만 국한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 우주 속에 고아처럼 버려져 춥고 지독히 고독(孤獨)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소한 문제를 가져가도 반가이 맞아 주신다. 왜냐하면 그 하나하나가 예수님께는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리차드 포스터 <기도> 248쪽)

 

맞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것도 주님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한국교회가 거룩해지고, 남북이 통일되고 세상이 복음화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여기의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오신 분 있습니까? 그럼 기도하십시오. 혹시 자녀들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이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그런 기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혹시 카드빚을 갚아야 하는데 돈이 부족합니까? 기도하셔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은 우리를 전인격적으로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에 누가 일용할 양식을 구합니까? 쌀은 살통에 가득하고 떨어지면 마트에 가서 사면됩니다. 아이들이 다치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공부 못하면 과외를 시키면 됩니다. 사소한 것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을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능하고 부족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필립얀시는 그의 <기도>라는 책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두 번째 의미는 바로 내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때문에 내가 너희를 책임지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소한 문제를 통해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간섭하시고 도와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가을입니다. 여물게 가을이 익었습니다. 지난 주 산에 올라가야 단풍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젠 거리에도 붉고 노란 가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을은 우연히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매일 주시는 은혜가 축적되어 이곳까지 왔습니다.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가을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예배 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널리 널리 증거합시다. 열매를 보여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익은 과일입니다. 라고 말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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