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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C. S. 루이스

샤마임 2013. 11. 5.

크루테이프의 편지

 C. S. 루이스 / 김선형 옮김 / 홍성사





 

'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이스가 책을 읽기 전 독자들에게 먼저 주지시킨다. 거짓말쟁이 악마. 그의 말은 처절할 만큼 조작되고 모호하게 꾸며지고 화려하게 장식된다. 이점은 간과하면 안 된다. 타자로서 인간을 주시하고 멸망시킬 대상으로서 인간에게 접근하는 악마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그의 전술을 간파하지 않으면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영원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2차 대전이라는 전시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루이스는 특정 교파나 특정 공동체를 대표하지 않는 순수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를 드러내야 한다는 과업을 맡는다. 그는 위로부터의 신학, 즉 하나님으로부터 기독교를 전파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난제들을 들고 출발한다. 때론 경험이기도하고, 때론 일상의 범주에서 찾아낸 삶의 모호함 이기도하고,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즉 삶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을 추론해가는 귀납법적 방법을 사용했다. 어쩌면 루이스의 변증은 여호와가 아닌 보편명사인 하나님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의 변증은 종착역이 아닌 기독교라는 기차에 오르도록 열어주는 개찰구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은퇴?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신참인 웜우드 악마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진 31개의 편지로 이루어져있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유혹과 다른 방법을 이용한다. 즉 극단의 상황으로 가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스스로 눈치재지 못하도록 하여 더 이상 기독교의 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그의 임무다.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19쪽)

 

기독교의 진리를 아예 차단하지 않는다. 그건 하수들이 하는 것이다. 차단하면 인간은 더욱 탐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적당히 현재라는 미끼를 던져주면서 '나중에' 하라고 넌지시 미루게 하면 된다. 악마의 존재를 실제가 아닌 개념으로 인식시키는 방법도 있다.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도 종종 발견된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인간의 경계들을 교모하게 든다. 때론 동물적 본능을 이용하고, 때론 천사로 착각하게 함으로 죄를 망각하게 한다.

 

종교적 일수록 악마는 즐거워한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 더 그렇지. 이 아래에는 그런 인간들이 우리 한가득 득실거리는 판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여주마.”(51쪽) 종교적, 즉 피상적 사고에 머문다면 결국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너무 지나치게 생각해도, 완고해지거나 거기에 심취해 버리고 만다.”(팡세 381번) 중도, 아니면 중용의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인간은 언제나 극단적이다. 너무 지나치던지, 너무 결핍되던지 둘 중 하나다. 악마는 인간의 신중하지 못함을 간파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적’ 인간이다. 진리에 대한 진심어린 숙고 없이 타성에 젖어 스스로 진리에 도달했다고 착각한다.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더욱 종교적이 되게 하여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는다.

 

섬뜩한 정도로 인간의 내면을 그린다. 지인의 가족 중 한 분은 이 책을 읽고 기독교신앙을 버렸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보지 말아야할 인간의 추악함을 본 것일까. 인간에 대한 회의가 지배한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 만나면 묻고 싶다. 쉽지 않는 책이다. 실망 하든지, 탁월함에 넋을 잃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부디 신앙은 잃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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