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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일반서적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by 하늘땅소망 2013. 11. 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 돌베게 



책도 첫인상이 있다. 그 느낌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되기도 하고,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기도 한다. 생각의 프레이밍 효과이다. 그만큼 첫인상은 중요하다. 2001년 4월 20일 그날은 금요일이다. 해운대 한성서점에서 구입했다. 한성서점이 아직도 존재할까. 급 궁금해져 인터넷 지도를 검색했지만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상에 한성서적만 있을 뿐이다. 사라진 걸까. 무엇 때문에 문을 닫은 걸까. 지역서점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지만 더 이상 더듬을 기억조차 없어지니 아쉬움이 크다. 좀 더 많은 메모를 했더라면 좋았을걸.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 이유는 이거다. 아직도 이 책을 완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사놓고 앞부분 몇 장을 읽다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아 몇 년 동안 방치해 두었다. 그러다 올 초에 다시 이 책의 진가를 알고 읽기 시작했다. 12년 동안 관심과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지만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딱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첫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렸다. 처음 책을 접할 때 저자에 대해 무지했다. 이름만 들었을 뿐 저자의 삶의 맥락을 깊이 되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단어도 어렵고 알 수 없는 깊이가 빠져들고 싶은 마음을 빼앗아 갔다. 도망친 것이다. 그렇게 잊혀졌다.

 

수년에 한 번씩,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책을 집어들고 몇 장씩 읽곤 했다. 처음은 어려웠고, 점점 깊이가 느껴졌다. 그러나 다시 빠져나와 자기계발서같은 헤픈 책을 읽곤 했다. 갈증이 일어나면 어느새 손에 이 책이 들려있었다. 그러기를 서너 번하고 나니 12년이 흐른 것이다. 가깝고도 먼 고향 같은 책이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신영복교수의 문장이 허투루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길어 올려 심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의 길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 ‘문장력’은 마법같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어느 날 서점에 들러 신영복 교수의 새로운 책 ‘나무야나무야’를 발견했다. 표지가 ‘감옥으로부터의사색’과 영판 형제지간이다. 출판년도를 보니 ‘감옥’보다 2년 앞선 96년에 출간한 것으로 되어있다. 구간인 셈이다.


이오덕 선생인은 '사람이 글이다'고 했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알듯, 신영복교수의 글은 자기내면으로 천착한다. 내밀하게 파고드는 깊은 성찰의 글은 나를 보게 한다. 감옥에서 보내는 글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단순함으로 우직하게 나아간다. 오그라들듯 문장이 심령을 파고든다. 감옥은 겨울보다 여름이 더 지옥이라는 말, 아버님게 미안하다는 말, 삶의 회의를 뼈속까지 체득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뭉클하다. 


1986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이유도 모르는 체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출소까지 20년 20일이 걸린다. 올림픽을 한창이던 1988년 8월 15일 출소한다. 질긴 운명이다. 무(無)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잊어야한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이라곤 수인들 벽 그리고 무의한 일상의 연속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던 편지를 드물게 내 보낸다. 그 편지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절제되고 사유할 수 밖에 없었다. 직유는 삼가고 은유가 불가피하다. 사건이 아닌 자연을 노래해야하고, 정치가 아닌 삶을 성찰해야 했다. 비운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자시을 가꾸고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게 했다. 이 책의 묘미는 절제와 은유다.

 

벌써 중추. 저희 공장 앞에는 밤새 낙엽이 적잖게 쌓입니다. 낙엽을 쓸면 그 조락(凋落)의 애상에 젖는다고 합니다만, 저는 낙엽이 지고 난 가지마다 드높은 가지들이 뻗었음을 잊지 않습니다. 1971. 10. 7


성찰이란 의도적이야 할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10점
신영복 지음/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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