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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답게 살아라

샤마임 2010.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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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답게 살아라

 

왕하 4:1-6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 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이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문제의 발달 / 비극적인 인생

 

오늘 본문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엘리사를 따라 선지자생도로 살아가다 무슨 연유는 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죽고 맙니다. 문제는 남편이 죽고나자 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동안 먹고 살 것이 없어서 빚을 지고 살다가 남편이 죽으니 더 이상 빚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빚쟁이가 아내에게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선지생도의 아내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그러자 그 빚쟁이는 아이들을 팔아 그 빚을 대신하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것이 결국 이것이라니 얼마나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의 인생도 이러한 일이 종종 일어나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험거리가 되고 낙담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왔습니다. 심지어는 빚까지 내어 건축헌금도 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가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날아온 딱지들이 집안 여기저기 붙어갑니다. 그냥 생각해본 것이지만 이러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결법은 없는가?

여인은 쓰라린 가슴을 안고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혹시나 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 하며 한탄하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의 사연을 들은 다음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럼 내가 너를 위해 어떻게 하라?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엘리사의 질문은 유의하여 보십시오. 그는 분명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가지고있는 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여인은 엘리사의 물음에 별로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을 통해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엘리사와 여인의 중대한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나?’이고

여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얼마나 다릅니까? 엘리사는 여인의 소유한 그것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베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주의 깊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대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런 능력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혼자서 일하시지 않고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무엇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것, 망각하고 있는 것,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주목하십니다.

내가 실패하고 무너지고 좌절했던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십니다. 도망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가는 하는 것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졌지만 바로 그곳에서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시작하십니다.

신약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리 속의 작은 소년이 가진 오병이어를 통해 수만명의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시작합니다. 바로 지금 내가 가진 바로 그것으로 주님은 시작하십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주님께 받았지만 무시하거나, 별 볼일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십니다. 내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을 통해 일하고 싶어하십니다.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주님은 당신을 다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자! 이제 주님께서 기적을 만들어가는 역사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 미션: 그릇을 빌리라

지금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리라 조금 빌리지 말라.

첫 번째 엘리사가 명령한 것은 그릇을 빌리라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엘리사의 이러한 요구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대충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 듯이 과부가 빌리는 그릇은 분명 그 여인의 믿음의 분량이요 크기를 의미합니다. 그 여인이 얼마만큼의 그릇을 빌리느냐는 그 여인의 믿음의 크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이야 그릇을 빌리는 것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그러나 당시.. 지금으로부터 3000년이나 지난 과거에 그릇은 아무렇게나 빌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원시부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보십시오. 그릇은 집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집의 귀중품입니다. 그 그릇으로 물을 길러야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그릇의 크기는 평상시의 과부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릇을 갑자기 빌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유를 말할 수도 없고, 무턱대고 빌러야 하는 이 상황에서 자신의 귀중한 것을 빌려주는 것은 보통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빌리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은 관계의 분량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웃을 섬겼으며 그들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았는가가 바로 오늘 빌리 수 있는 그릇의 분량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두 번째 미션: 묻을 닫고 빌려온 모든 그릇에 기름을 채워라.

엘리사의 두 번째 미션은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본문은 마치 요한복음 2장의 가나안 혼인잔치를 보는 듯합니다. 주님은 막무가내로 하인들에게 물을 떠서 손님들에게 주라고 명령합니다. 물을 떠나주다니요?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기적은 순종을 통해 일어납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기적은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숨겨진 원리가 드러나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엘리사는 문을 닫고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합니다. 문은 닫는다는 의미는 확실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문을 닫는다는 것은 소통을 단절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직 한가지 그것에 집중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적은 은밀한 상황 속에서 일어납니다. 기도는 은밀한 것입니다. 오직 주님과 나와의 일대일 상관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을 이야기 하며서 몇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먼저는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기도를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뿐 아니라 금식까지도 은밀하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적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실 때 그 방에있던 모든 사람을 내어쫓아내시고 오직 베드로와 요한만을 데리고 그 방으로 들어가시고 나서 소녀를 치유하십니다.

 

은밀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적의 밤이 지나고 수많은 이웃들이 그 여인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들은 지금까지의 여인과 전혀다른 모습들 발견합니다. 환한미소, 행복한 얼굴, 기쁜 말투 등등... 그들은 의하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저 여인을 행복하게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 웃게 하는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골방은 있습니까? 은밀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말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묵상하며 그분과 우리의 깊은 곳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습니까? 골방은 문자 그대로의 골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편단심(一片丹心) 심지 굳은 믿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 special space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힘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합니다. 오직 주님과의 긴밀한 대화 속에서 우리의 힘이 나오는 곳입니다. 다른 의미로 그곳은 세상과 단절된 광야 같은 곳입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에게 마지막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을 위해 큰일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과부의 변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저토록 절망의 상황 속에서 행복하게 하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깜짝 놀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여인 자신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단 말인가? 라며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기대하지 않음으로 큰 복을 받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반세기 전에 위대한 신앙인이요 영국의 설교자였던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복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려야 할 축복들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주일날 교회에 갑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혹시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 가운데 아무런 기대감도 갖지 않고 그냥 어쩌다보니 오신 분은 안계십니까?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늦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지금 여기서 주님을 기대합시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며, 나를 통해 멋지게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영국으로 인도선교의 대부이며 큰획을 그었던 위대한 선교사 윌리암 캐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큰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시도하라.”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 1761-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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