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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2013년 6월 29일-요셉, 소설로 읽다.

샤마임 201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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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2013년 6월 29일

-요셉, 소설로 읽다.


성경을 문학적으로 읽기 시작한 때는 18세기 이후이다. 불행하게도 4세기 이후 우리는 성경을 교리를 추출하거나 구원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보의 원천으로서의 성경만을 고집했다. 그 극단에는 성경 자체를 신봉하는 성경주의자들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KJV만을 거룩하고 깨끗한 성경으로 고집하는 이들까지 있다. 어리석기 그지 없는 이들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성경은 영어가 아닌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왜곡되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는 성경이라면 번역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번역된 이상 번형되고, 변형되다보면 별질의 가능성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울의 말처럼 문자는 죽이는 것이고 영이 살리는 것이다.


보수주의가 성경에 집착하는 동안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에서 신성을 거두어들이고 철저히 인간의 욕망의 발로인 것으로 치부했다. 특히 헤겔의 좌파 계승자인 포이에르바하는 종교 자체를 인간적 욕망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주장은 막스로까지 이어져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몰아 세웠다. 그 이면에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의 변화가 꽈리를 틀고 있다. 18세기 이후 일어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사상은 신성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성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어리석음을 범한다. 결국 몽매무지한 철학자들의 아집은 20세기에 일어난 두번의 세계대전으로인해 자리를 실존주의에게 내어 놓는다. 합리주의가 성경을 인간의 책으로 무시하고 괴롭혔다면, 실존주의는 성경에 관심 자체를 끊어 버렸다.





한국의 주류교단은 칼빈-영국 청교도-미국 분리파 청교도-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극단적 보주주의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다. 극단적 보수주의는 미국이 곧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하는 역사와 종교의 일체, 백인 우월주의와 백인문화가 곧 복음으로 착각하는 형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오류와 왜곡은 교회로 하여금 시대적 소명을 상실하게 했고, 백인 문화가 곧 복음인 것처럼 강요했다.


프린스턴 신학의 좌경화로 인하여 일단의 교수들이 박차고 나와 웨스트민스터 대학을 설립하게 된다. 순수한 교리 보존과 성경을 옹호하기 위한 열심 때문이다. 이들의 초기 열정은 아름다고 고귀한 것이었다. 메이첸, 윌슨, 보스, 핫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경을 극단적 보수적 해석으로 한정시키 것이다. 좀더 구체화 시킨다면 자유주의와 맞서기 위해 변증의 날은 예리하게 세운 반면 성령론은 교리에서 중생의 개념이상을 논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명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기미가 보이면 비판의 칼을 들었다. 슬프게도 이러한 극도의 예민함은 복음의 풍성함을 교리와 구원이라는 단어로만 한정시키고 만다. 더나아가 맹목적 성경맹신주의라는 사생아를 낳게 된다.




이러한 성경맹신주의는 유교적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꽃을 피웠다. 이덕무나 정약용의 실학주의자들조차 책을 읽을 때 자세를 바르게 하라 충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단청을  피우거나 성경=말씀을 읽을 때 경박스럽지 않는 말투를 사용해야 했다. 심지어 강대상이 있는 곳은 지성소이니 평신도들이 함부로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배타적 장소까지 생겨났다. 율법시대로의 복귀인지 퇴보인지 모를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다보니 성경은 엄중함과 무거움으로 인해 점점 교인들에게서 멀어져갔고, 관심 밖으로 밀려 나게 된다.


이제 성경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명제를 부인하고 인간의 욕망의 발로라고 치부하는 포이에르바하의 주장을 따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확석화되고 경직된 성경 이해를 벗어나 원래적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 단 위에 올려진 먼지 쌓인 성경이 아니라 나의 손 때가 묻은 삶 속의 일부로서의 성경이 되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붙들고 씨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하늘에 있는 성경을 이 땅으로 가져와 우리의 한숨과 내면의 갈등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10점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살림


토마스 만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작가이다. 그가 쓴 많은 책 중에 요셉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책이 있다. '요셉과 그 형제들'이란 책이다. 모두 6권으로된 대작이다.

1. 야곱이야기

2. 청년 요셉

3. 이집트에서의 요셉(상)

4. 이집트에서의 요셉(하)

5. 먹여 살리는 요셉(상)

6. 먹여 살리는 요셉(하)

번역했던 장지연에 의해 <요셉과 그의 형제들 깊이 읽기>까지 합한다면 모두 7권이 된다.

요셉과 그 형제들 2 - 10점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살림




요셉과 그 형제들 3 - 10점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살림

토마스 만의 글은 한국적 정서에서 맛깔스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방위적 독서와 통섭적 독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탁월함에 숨을 골라야 한다. 문화와 시대, 신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그의 깊이있는 글쓰기는 요셉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의미들을 대작가답게 풍성하게 담았다. 요셉 이야기는 뻔하다? 그렇지 않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작가에 의해 다시 쓰여진 요셉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직되고 척박한 정서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역작이다. 


더불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매일성경도 주문했다. 중고등부에서 청매를 하기에 아내도 청매를 구입했다. 아이들에게 큐티를 시킬 양으로 고학년용 매일성경도 더불어 주문했다. 온 가족이 매일성경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게 되었다. 진즉부터 해 온 일이지만 요즘들어 온 가족 큐티의 열매를 얻어가자 더욱 매진하게 된다. 주마가편이 아니던가 . 성경도 읽고 싶을 때 더 열심히 읽어야 한다. 


청소년 매일성경 2013.7.8 - 10점
매일성경 편집부 엮음/성서유니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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