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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다카시

샤마임 201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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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이다. 정확하게 20012년 2월 7일 구입한 것으로 적혀 있다. 나는 책을 살 때 거의 대부분 안 표지에 나의 사인과 구입한 날짜와 장소 등을 기록해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의 책'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주지 않으려는 꼼수도 있다. 예전에 백여권의 책을 남에게 그냥 줘 버린 적이 있다. 학업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주고 나서 얼마나 후회 했는지 모른다. 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책에 남겨 놓은 나의 분신인 메모 때문이다. 사실 그곳에는 내가 싫어하는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짧막하게 적어 놓았다. 그걸 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 때부터 나에게는 하나의 신조가 생겼다. 책은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다. 심지어 빌려 주지도 않는다. 고집이면 고집이고 아집이면 아집니다. 그래도 괜찬다. 내 책이니 말이다. 책을 살 때마다 남겨놓는 메모는 언제나 그 지정학적 장소와 기억 속으로 나를 초대한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책을 아무렇게나 대하고 팔 생각으로 적당히 읽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은밀한 사랑이다. 책은 나의 연인이다.

 

이 책을 살 당시 나는 독서중독에 흠뻑 빠져 있을 때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때는 좀더 심했다. 밥 먹을 때도 책을 읽다가 아내에게 잔소리 들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다치나바 다카시는 일본에서 저명한 저술가이다. 한국의 이어령이라하면 실례가 될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의 독서는 다독과 속독이 특징이다. 천천히 읽기라던가 꼼꼼히 읽기 등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다.

그는 다방면에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탁월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인보다 더 높은 지식수준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독서습관은 기자생활을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속독과 다독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무릎을 치며 기뻐했겠는가. 특히 그의 서재인 고양이 빌딩을 소개할 때에는 입어 벌어질 만큼 환상적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쩔 때는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이 생겨났다. 독서 중독자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크게 네 장으로 분류했다. 1장에서는 나의 독서론, 2장에서는 나의 서재인 고양이 빌딩을 소개하고, 3장에서는 자신의 읽어온 책의 흔적과 방법들을 소개한다. 책 제목은 이곳에서 가져왔다. 마지막 4장에서 부록이며 자신의 개인적인 사상들을 묶어 놓았다. 한 가지의 주제로 관통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책 읽기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들을 다룬다.

 

다치바나의 독서는 '다독'과 '속독'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독서를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수단으로서의 독서로 구분한다. 목적으로서 독서이다. 저자는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한다. 독서를 통한 쾌락과 자기성찰을 추구하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독서를 한다. 그러다보니 문학작품을 거의 읽지 않으면 불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수단지향적 독서관은 고전에 대한 반감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소설 종류는 읽을 틈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59쪽)

십여년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나의 성향도 그러했기에 별다른 비판의식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다치바나식의 수단으로서의 독서는 한계가 있으며, 진정한 독서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체감한다.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한다면 다치바나식의 독서는 탁월하다. 그는 실전에 필요한 14가지의 독서법을 소개한다.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으라.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무리해서 읽지 말라.

5. 읽다가 그만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넘겨 보라.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8. 가이드북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11.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하라.

12.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로 확인하라.

13.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하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여튼 젊었을 때 많이 읽어라. 등이다.

 

다치바나는 독학으로 그곳까지 이르렀다. 어쩌면 독서법에 대한 조언은 불필요해 보인다. 대부분의 독서의 대가들은 독학에 의하여 체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독서의 대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들었다면 그들은 대부분 대가들이 아니다. 어줍짠게 알고 있는 이들이다. 이것 또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 진정한 실력은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몸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또한 누군가로부터 책을 추천 받아 보거나 독서법에 대한 들은 적이 거의 없다. 가끔 흘려 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조언은 받은 적도 없고, 학교에서 배운 적은 더더욱 없다.

 

그는 괴물이다. 그가 한 달에 먹어 치우는 분량은 누군가의 평생 독서 분량이다. 그는 책 포식자이다. 그를 함부로 모방했다고 큰 코 다칠 것이다. 그러나 배울 점이 분명 많은 사람이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나 자신만의 분명한 독서관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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