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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9:1-12 날 때부터 소경된 자

샤마임 201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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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9:1-12 날 때부터 소경된 자


길을 가다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를 제자들이 봄


궁금해짐: 저 사람이 소경된 이유는 무엇일까?


논쟁1) 부모의 죄다, 그렇지 않다면 날 때부터 소경이 될 리가 없다.

논쟁2) 자신의 죄다, 우리가 모르는 죄를 그가 태속에서 지었을 수도 있다.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다. 왜곡된 체로, 속죄양을 찾아내 제물을 삼으려 한다. 잔인한 사고, 소경에게 아무런 도움도 답도 주지 못하는 무능하고 공허한 논쟁이다. 우리는 얼마나 무익하고 공허한 논쟁에 휘말리는 가. 이긴 자도 없고, 모두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무익한 논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논쟁에 이기기 위해 올을 올린다. 논쟁이 깊어지고 첨예화 될수록 소경은 더욱 매장되고, 소경됨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 질 수록 그를 일으킬 수 없도록 매장한다. 오,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들이여, 그런 논쟁으로 무엇을 하고, 누구를 살린단 말인가. 


예수님

아니다! 부모의 죄도, 그의 죄도

이   다!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 한다.

그럼 하나님의 일이란?

소경을 고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보지 못하는 이들을 보게하여 하나님께로 이끌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결국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를 믿어야 영적으로 눈을 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핵심을 찌른다. 무익한 논쟁, 답도 없는 논쟁을 하지 말라. 오히려 그를 고치기를 노력하라. 답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행하실 것이다. 오직 실로암으로 가라. 그것이 답이다. 이 세상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치료는 불가능하다. 실로암이 예루살렘 밖 기혼에서 생명수를 끌어오듯 주님은 죽음의 역사 너머인 영원한 천국에서 생명을 끌고 오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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