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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입구 앞 예배의 정당성에 대하여

샤마임 201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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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2년 1월 11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카지노 입구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서 많은 분들이 클릭을 하고 있다. 3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카지노 앞에서의 예배 논란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카지노 앞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옳은가이다.


답은 명쾌하다. 아니다!


이것은 예배에 대한 전적인 오해와 이해부족 때문이다. 예배는 대상이 하나님이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카지노 앞에서 치유의 목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물론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예배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 모임의 의도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지혜롭지 못함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카지노가 아니라 지난번 처럼 절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을지도 모른다. 다행이 타 종교가 아니라 건전치 못한 도박장이라는 점에서 예배행위가 어느 정도 묵과될 수 있지만 정당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예배의 방향이 잘못됐다.


첫번째 언급할 부분은 예배에 대한 부분이다. 예배는 예배를 통해 뭔가를 이루려는 '수단'이 아니다.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드려져야하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 또다른 뭔가를 시도하는 꼼수를 버려야 한다. 그럼 의미에서 예배는 목적으로서의 예배만이 정당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배를 통해 도박 중독자 치유 명분은 아무래도 타당성이 약해 보인다.


예배로 영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모든 땅을 여호수아에게 주지 않았다. 오직 가나안 땅만을 주었다. 심지어는 가나안이 지척인 모압과 암몬, 에돔은 전쟁하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신다. 이러한 구분은 이스라엘이 가지는 영적 독특성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세상을 상징적으로 존재로서 대표하는 것이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이 종종 오류에 빠지는 힘은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에 함몰되는 것이다. 즉 미국식 복음주의에 전염된 잘못된 종교관은 모든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주장한다. 미국은 순수한 기독교이고 이슬람이나 북한은 악의 축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비록 그들이 잘못된 사상과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강제로 그들을 교화하거나 예배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슬람이 코란을 받지 않으려면 칼을 받으라는 논리가 전혀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부터의 억압과 착취로서의 기독교은 실수다!


기독교인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시민정신을 온전히 발휘하는 한 개체로서 온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차라리 예배를 드리지 말고 카지노를 반대하는 데모를 벌이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민으로서 건강한 나라와 국가를 만들기 위한 위대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대안을 만들어야 할까?


먼저 예배의 처소를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

둘째 보이는 식의 예배가 아니라 치유를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한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책자를 나누어 주거나, 가정이 파괴되거나 위기를 당한 가정이 있다면 교회가 나서서 도와 주어야 한다.

셋째, 사회운동과 적절한 법적인 장치들을 통해 카지노를 막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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