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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27-30 간음치 말라

샤마임 2012. 12. 20.

마 5:27-30 간음치 말라


문단에서 중요한 중심주제로 나누어 보자. 


간음치 말라는 율법이 한 말이다.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주님은 행위로 간음하는 것 즉 율법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다. 더 왁벽하고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계신다. 율법의 중심, 핵심,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그것은 마음이다. 율법은 마음을 향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 행위만을 정죄하지 않았다. 화살이 적의 심장부를 조준하고 있는 것처럼 율법은 죄인들의 심장을 조준하고 있다.


율법으로만 보면, 간음하지 않으면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음 속으로 음욕, 음란한 마음을 품기만 해도 그는 이미 죄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율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율법을 확장 시키셨다. 만약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자가 율법에서 간음을 행하는 것과 동일하다면, 율법에서 돌로 간음한 자를 치는 것처럼, 모든 음욕을 품는 자들은 돌로 쳐야 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은 음욕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음욕을 단 한 번이라도 품어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모든 사람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한다. 주님은 본문을 통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두가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다.


음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용어를 잠깐 빌린다면 가능태다. 한국 속담으로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다. 죄인들을 모두 음욕을 품는다. 아직 간음을 몸으로 행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마음 속에는 음욕으로 가득차있다. 간음을 행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죄를 범할 수 있는 조건만 되면 어느 누구도 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 음욕이 있기 때문이다. 


구절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27 보고

28 음욕

29 눈

30 손


보고는 눈과 이어지고, 음욕은 손으로 이어진다. 즉 마음과 몸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다. 본성이 변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제 남은 것은 심판과 저주 뿐이다. 


그럼 대안은 없는가?


오직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강권적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도 살아갈 수 없는 소망없는 죄인들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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