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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 믿음의 모험

샤마임 201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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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설교

믿음의 모험

여호수아 3:7-17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도입

 

질문: 여러분 살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게 뭘까? 어떤게 가장 힘들까?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

힘들고 어렵다라는 뜻을 생각해 보자. 힘들고 어렵다는 말은 ‘나의 능력’과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만약 고난의 힘이 50인데 내가 가진 힘은 100이라고 한다면 쉽게 건너 뛸 것이다. 그러나 80-90 정도까지 올라가면 약간 힘에 부치다. 그런데 100을 넘어 버리면 우리는 그것을 ‘불가능’ 이라고 말한다.

 

중간고사를 치는데 문제가 100문제 나왔어, 그런데 아는 문제가 50문제만 나오면 ‘절망’, 80문제가 나오면 ‘다행’, 100문제가 다 아는 문제면 ‘할렐루야!’죠. 우리 인생에도 절망, 다행, 할렐루야의 단계가 있다. 어떤 친구는 언제나 절망의 단계에 머무는 친구가 있고, 어떤 친구는 다행에 무척 기뻐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희귀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할렐루야!’의 단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부러워하며, 속으로 질투합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엄친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천재, 다른 말로 화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절대 따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부터 포기합니다. 따라할 생각을 꿈도 꾸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려 언약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 했는가?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왜 불순종했는가? 간단하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힘을 100으로 생각했다면 자신들은 30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한 것이 뭘까? 자신들이 가진 힘만 생각했지, 자신들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할 수 있다. 정말 그들은 들어갈 수 없는가? 답은 ‘들어갈 수 있다’이다.

다음 질문은? 어떻게?(어떡하지?)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고,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는 비결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천재가 되고, 보통인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있다. 성경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믿음의 순종을 하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믿음의 모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위대합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게 충만하십니다.

우리는 못하는 것이 많지만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전적의탁의 삶, 전적의탁의 믿음이야 말로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사역이다.

 

문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자신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할 수 있어!’ 라고 말해도, ‘난 못해’ 라고 말한다.

가장 쉬워 보이는 순종이 사실은 가장 힘들다. 이유는?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본성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마치 정원을 가꾸지 않아도 정원은 순식간에 잡초 더미가 되듯이 우리는 그렇게 된다. 그러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의지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의 영적인 부분에서도 동일하다.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동안 잘못된 생각과 불순종의 삶에 타성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 코끼리가 있다. 그 큰 코끼리가 작은 쇠고랑에 채워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의 습관 때문이다. 코끼리 조련사들이 거대한 코끼리를 조련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막 태어난 코끼리를 쇠사슬에 매어 놓는다. 작은 코끼리를 쇠사슬을 끊을 힘이 없기 때문에 몇 번 시도하다 그대로 포기한다. 코끼리는 자라나면서 ‘자신은 절대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에 사로잡힌다. 커서 쇠사슬을 충분히 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을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쇠사슬에 평생을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타성, 죄악된 습관에 매여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제한한다.

 

처음이 중요하다. 모든 일이 처음이 힘들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만큼 일은 어렵지 않다. 닥쳐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을 이미 약속하셨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그대로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로는 아멘을 외치지만 삶을 통해서는 순종하지 않는다. 믿음은 지적인 동의뿐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바로 그 때 기적은 일어나는 법이다. 저는 반석교회 중등부가 이렇게 되는 역사가 날마다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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