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성경020727금

샤마임 2012. 7. 26.

매일성경020727금 찬26장

본문 고린도전서 14:13-25

 

현대를 일컬어 소통의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정치에서도 소통의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따로 놀고, 사장과 직원들이 따로 놀고, 공무원들과 국민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면 분명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통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말은 그만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통의 시대에 불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큼 불행한 삶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려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사자성어를 빌린다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나 동문서답(東問西答) 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시간을 이야기해도 내용이 전혀 진전되지 않고 같은 이야기만을 계속하여 되풀이 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근래에 뇌의 세포 중에 거울 뉴런이란 것을 발견했습니다. 1992년 이탈리아 과학자 지아코모 리졸라티(Giacomo Rizzolatti)와 연구팀은 동물이나 사람의 뇌에는 거울뉴런이 있어서 보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숭이의 뇌를 연구하던 리졸라티는 어느 날 연구원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들어오자 원숭이의 뇌가 갑자기 반응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뇌파의 검사결과 원숭이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을 때의 뇌파와 동일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하는 것과 보는 것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거울뉴런은 최근의 발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의 중의 하나입니다. 거울뉴런의 중요성은 거울뉴런을 통해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슬퍼하면 나도 슬프고, 상대방이 기뻐하면 나도 기쁘고, 상대방이 힘들어 하면 나도 같이 힘들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마음을 나누는 것이고 진심을 같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거울뉴런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더하겠습니다. 케나다의 맥길대(McGill University)의 제프리 모길 교수 연구팀은 지난 6월 ‘사이언스’지(誌)에 생쥐가 동료의 고통을 같이 느끼는 거울 뉴런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함께 자란 생쥐와 처음 보는 생쥐에게 각각 전기 자극을 가한 뒤 이를 지켜본 생쥐의 뇌 반응을 조사했습니다. 생쥐는 모르는 생쥐의 고통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같이 자란 동료가 고통 받으면 뇌에서 자신이 직접 고통을 받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린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소통이란 근본적으로 서로 사랑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상태이거나 무관심한 상태에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일한 사고를 보고도 나와 상관이 없는 사건이라면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지만, 만약 나의 가족이거나 친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면 크게 슬퍼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중심 주제는 ‘소통’입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영적 성숙은 방언이 아닌 예언을 통해 이루어짐을 이야기합니다. 방언의 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있고 예언은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있다고 말합니다.(22) 방언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라면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납득시킨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음은 열매 맺지 못한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17절에서는 다른 사람의 덕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음이 성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보고 마음을 나눔으로 살아갑니다. 방언은 좋은 것이지만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소통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계속 강조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영적인 과시욕을 보려주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선물이 욕망의 수단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이러한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도바울은 20절에서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충고합니다. 장성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알아 듣도록 분명하게 말하고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