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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예배설교-온유한자의 복

샤마임 201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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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예배설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마태복음 5:1-5

 

오늘 이곳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어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프랭크 듀배넥이라는 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놓치기 힘든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가 내가 해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하다 벽에 기대어 쉬는 모습, 사과를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 독서하는 모습, 일하러 가는 어떤 여인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말 평범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고향을 멀리 떠나온 사람에게는 꿈입니다. 언제가 다시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입니다. 다음은 현재 암투병중인 이해인 수녀의 <희망은 깨어있네>라는 시집에 있는 일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입니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여유, 힘든 중에서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 유머를 즐기는 여유, 천천히 생각할 줄 아는 여유,

사물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여 보는 여유, 책을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은 여유를 이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아직도 수련 중이긴 하지만 이 학교에서 다시는 보는 세상은 얼마나 더 감탄할 게 많고 가슴 뛸 일이 많은지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요.

 

여러분도 예전처럼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저녁식사를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것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꿈입니다. 우리는 방금 읽은 시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보는 것이고, 사소한 하루가 귀중하고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장 5절의 말씀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이요”

温柔的人有福了,因为他们必承受地土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 시편 37:1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但谦卑人必承受地土,以丰盛的平安为乐

 

‘온유하다’라는 뜻의 의미는 어떠한 부당한 대우에도 친절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의 무엇인지,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그 뜻을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나를 섭섭하게 하면 나는 그에게 복수합니다. 그것은 온유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깍아 내리거나 비판하면 나도 그를 욕하고 비판 합니다. 이것 역시 온유한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고, 비판한다 할지라도 성도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했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당하지 않아야할 핍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같이 욕하지 않고 같이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대항하여 분노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자하는 자신의 소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온유한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람을 다르게 본 것입니다. 저주받고 멸망당할 죄인들로 보지 않고, 불쌍하고 처량하고 방황하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他看见许多的人,就怜悯他们。因为他们困苦流离,如同羊没有牧人一般


우리가 세상을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으로 보기만 한다면 온유할 수 있습니다. 그를 미워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본다면, 우리는 그에게 친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언제나 주님의 온유함으로 충만하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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