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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장12-15

샤마임 2010.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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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의해 주도되는 삶

막 1장12-15

세례요한에 의해 세례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행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홍해라는 물세례를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들어가게 된다.

 

마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주도면밀하게 기록하면서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광야의 삶에서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음을 말해준다.

 

마가는 시험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하지 않음으로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광야로 내 몰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고난에 때에 낙망과 퇴보의 시기에 하나님의 미움이나 버림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조건 편한 길, 출세의 길, 성공의 길로만 인도해야 한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때로 주님은 우리를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로 인도하기도하며, 견디기 힘든 광야의 삶으로 몰아가시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 환경이 어떠 하든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또한 지키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에 섯을 때 그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4:10-12)

 

이뿐 아니라 광야의 길을 갈 때 역시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음으로 인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는 이렇게 까지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16:2-3)

심지어 시편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단순한 원망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시편 78 :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하나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살게 할 수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오직 말씀만 있다면 모든 것이 풍요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광야는 모든 것의 부재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풍요로운 하나님의 임재영역이었습니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신8:1-4)

 

우리 주님은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오직 말씀으로도 살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14-15절은 요한이 잡히신 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요한의 잡힘이 중간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데 반해 마가는 예수님의 사역의 초기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러한 마가의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례요한의 사역에 제한되지 않을뿐더러 그 이상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앞서 세례 요한의 입술을 통해 밝힌 것처럼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통한 구약과 외적 죄사함의 표식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변화되는 내면의 문제요 본질적인 문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새로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Metanoia)가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의 헬라어인 메타노니아는 돌이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에서, 어디에서 돌이켜야 합니까? 바로 죄의 삶, 육신의 삶, 욕망의 삶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변화나 개선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본질이 바꿔야 합니다.

‘때가 찾다’는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의 모든 과거가 끝이나고 새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에 의해 완전한 변화,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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