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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교수, 골드스타인

샤마임 201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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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교수, 골드스타인


아래의 글은  <EBS 다큐멘터리 최고의 교수>에 나오는 골드스타인 교수의 철학을 소개한 글입니다. 1-12까지 목록을 연구실 잘보이는 곳에 프린트아웃하여 붙여 놓고 매일마다 그것을 생각하며 강의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77세의 노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에서 강의하고있으며, 동대학에서 최고의 교수로 동료교수들과 학생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고 있다. 77세의 노장이 어떻게 어마어마한 수업과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그의 수업 방법을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먼저 

그의 연구실은 오만 잡다한 것들로 지저분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강의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즉 실물을 통해 보여준다.


둘째, 

교수 연구실을 항상 개방해 놓고 지내며 누구든지 웰컴한다. 학생들은 질문이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다.


셋째, 

강의에 유머가 풍부하다. '개구쟁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넷째, 

학생의 입장에서 강의한다.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재미없게 가르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다섯째, 

가르침의 목적은 학생을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낙망하여 공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교수의 사명이 아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런 실수를 하느지 모릅니다. 


자 이제 골드스타인의 교육철학과 그가 모방했던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골드스타인 교수의 교육철학

 

나의 교육철학은 간단하다. 학생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인 내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소비자이자 가장 중요한 생산품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겪은 실수를 교훈 삼아 교수로서 지키고 따라야 할 원칙을 정해봤다.

 

1

수업은 제 시간에 시작하고 제시간에 끝낸다. 교수가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제시간에 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수업은 약속한 시간에 시작하고 끝난다.

 

2

강의노트는 현재와 관련 있어야 한다. 변화와 업데이트 없이 30년 동안 사용한 케케묵은 강의 노트를 계속 사요한 것보다 꼴불견은 없다.

 

3

나는 학생들이 준비되어 있길 바란다. 그러므로 교수인 내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항상 수업 전에 계획을 짜서 구체적으로 준비한다.

 

4

학생들의 참여를 기대하되 학생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들이 즐기기 위해 수업에 들어오길 원하다. 그들을 괴롭혀 수업에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5

나는 강의 노트만 읽는 일은 없도록 노력한다.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그 밖의 시각적인 자료들의 도움을 받는다.

 

6

나는 수업 첫째 날에 평가를 위한 룰을 정하고 나중에 등급이나 평가 시스템을 변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시험과 퀴즈, 리포트에 대한 규정을 확정하며 이후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는다.

나는 적어도 3번 이상의 시험, 퀴즈, 프리젠테이션, 북 리류, 오럴 리포트 등을 실시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자신들의 성적 진행을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학기말에 점수를 받고 놀라지 않는다.

나는 공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학생들에게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면, 나에겐 ‘그들이 배웠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내가 잘못 평가했다면 나는 실수를 인정하고 성적을 바꿀 수 있다.

 

7

나는 학생들이 나를 이용하도록 한다. 나의 연구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학생들이 언제라도 들어와 이야기할 수 있다.

 

8

나의 수업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나는 추천서를 써준다. 그리고 추천서를 보내기 전에 반드시 해당 학생에게 사본을 주어 추천서 내용을 보게한다. 추천서 내용이 빈약할 경우 다시 보완하기 위해서다. 만약 학생들이 일을 얻지 못한다면 나의 가르침이 헛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취업 지원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9

나는 학생들이 책을 많이 사기를 바라지 않는다. 긴 참고 서적 목록이 감명적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 책값은 학생들에게 재정적으로 가장 큰 짐임을 기억한다.

 

10

나는 교과서만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서로만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나를 만날 필요가 없다. 또한 나는 학생들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와 분량 내에서 가르치고자 노력한다.

 

11

나는 항상 리포트와 시험지에 의미있는 코멘트를 달아준다. 그래야 학생들이 왜 그런 점수를 받았는지 납득할 수 있다. 학생들은 늘 교수의 코멘트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코멘트는 그 자체로 훌륭한 가르침의 교수다.

 

12

무엇보다도 나는 잘 듣기 위해서 노력한다.

 

 

최고의 교수 뒤에는 최고의 스승이 있었다

 

매릴랜드 대학교에서 만난 고든 프렌지 교수님을 기억한다. 프렌지 교수님은 지금의 나처럼, 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연구한 역사가였다. 1951년, 교수님이 매릴랜드에서 진주만 공격에 대해 강의하실 때 나는 그의 학생이었다. 그리고 내가 25년간 공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그분의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연구를 하셨지만 프렌지 교수님은 생전에 단 한 권의 책을 남기셨다. 진주만 공격을 다룬 [도라! 도라! 도라!]라는 책으로,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후 교수님은 돌아가셨다. 내게 수많은 미완의 연구 자료들을 남겨주신 채.

나는 교수님이 연구하다 중단하신 것들을 이어받아 연구를 하고 교수님을 대신해 책을 출판했다. [진주만 이야기 At dawn we slept]라는 책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47주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교수님의 이름으로 출판했다.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던가?

지금 나는 예전 나의 스승처럼 되어가고 있다.

내가 하는 많은 행동이나 교수법은 그분을 모방한 것들이다.

그분은 수업하실 때 모자와 조끼를 입으셨는데, 나도 그런 차림을 즐긴다.

그분은 전형적인 독일인이어서 어투가 약간 거친 편이셨지만, 나는 그 외의 많은 부분을 닮아가고 있다.

그 분은 나의 영원한 ‘멘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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