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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표지, 기쁨

샤마임 201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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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세리에서 날마다 괜찮은 문구를 하나씩 올려 주는데 오늘은 이게 올라왔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공이란 사다리를 올라갈 수는 없다.                         - 美 속담 -


근래에 들어와 자기계발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습관에 대한 생각이 많이 옵니다. 긍정의 힘이 가진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를 생각해보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백독을 시작하면서 알게된 것은 동일한 햇빛이라도 뿌리에서 잘린 나무와 생수의 강에 뿌리내린 나무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 없는 맹목적 자기확신은 이 땅에서 성공을 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실패의 원인이 되고, 십자가의 엎드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됨의 확신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의미에서 빈센트 필 목사님의 긍정심리학은 부정하지만, 존 파이퍼의 기쁨의 신학은 환영합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의 일입니다. 선교사님의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는데 모두들 침울하고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왜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만 생각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묵상하지 않습니까?"

"?!!!"


부모가 열심히 고생해서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식들의 부모의 고생을 알고 날마다 슬퍼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웃을 때 부모도 웃습니다. 부모에 대한 예와 도리를 갖추어야 하지만 부모의 고생을 자식들이 모두 슬픔의 이유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한 번도 웃지 않았기 때문에 성도들도 웃어서는 안된다고 억지를 부릴 필요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권하죠. 그리스도인 다움은 세상을 초월하여 갖는 영적인 기쁨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얽매여 일희일비 할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상황과 조건을 초월하는 영원한 생명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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