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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에 다시 읽는 [님의 침묵]

샤마임 201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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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다시 읽었습니다. 불도인이란 기독교인 저에게는 약간의 거리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용운의 시는 종교를 떠나 휴머니즘을 애타게 찾는 실존적 존재라는 점에서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님의 침묵을 읽다가 문득 이 분이 성경을 읽고 시를 착상한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님을 예수님으로 바꾸어보고, 첫키스를 유다의 배신으로 바꾸어 보면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고난 주간에 읽으니 예수님의 고난과 묘하게 매치됩니다. 부활을 기대하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조국을 님으로 표현하고 다시 독립할 것을 기대하며 '님의 침묵' 주변에서 떠나지 못하며 애타하는 저자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주님의 부활을 고대하며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심정처럼 말입니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픈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슬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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