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종교철학의 프리즘 / 배국원 / 대장간
현대종교철학의 프리즘
뉴스엔조이에 기고한 서평입니다.
<현대종교철학의 프리즘> / 배국원 지음 / 대장간 펴냄
어쨌든 살아남았다. 육백 쪽 가까이 되는 분량은 고사하고, 고대 헬라 철학자들로 시작하여 초대교회 교부들과 중세 및 근현대의 신학과 철학까지 총망라한 거대 담론을 다룬 책을 읽기 쉽지 않다.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저자인 배국원 교수는 한국 신학계의 보기 드문 석학이다. 연세대와 서든 뱁티스트를 거쳐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적 거물 신학자들인 카우프만, 니이버, 스미스 아래서 수학했다.
갈보리의 고통과 무덤의 절대 망각의 시간을 견뎌 내고 드디어 삼일 만에 완독의 기쁨을 맛보았다. 순교자의 각오가 없다면 읽어 내기 힘든 책이다. 그러나 재미있고, 즐거웠다. 이래서 산악인들은 목숨을 걸고 점점 높은 고지에 도전하는가 보다. 산 정상에 우뚝 섰을 때 자신의 발아래 놓인 인류의 현존을 한눈에 직시할 때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불시불돈시돈(佛視佛豚視豚)이라 했다. 그러니 먼저 부족한 필자의 눈으로 대석학의 글을 평가하고 비평하는 것에 대해 먼저 용서를 구해야겠다.
전체를 3부작으로 나누었다. 1부에서는 종교 철학적 분석을, 2부에서는 신학적 반성을, 3부에서는 종교학적 지평을 살핀다. 모두 20개의 소논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자의 고백대로 10여 년 동안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편집했다. 단번에 한 가지의 주제를 다루지 않았기에 일관성이 약하고 중복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빛을 분해하는 분광기(分光器)처럼 '현대종교철학의 여러 측면을 분해하고 조명(13쪽)'하기를 원한다. 처음부터 한 가지의 주제로 책을 쓰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니 겹치는 부분은 반복 학습이라 여기는 관용을 베풀어 주면 좋을 성 싶다.
1부에서는 종교철학이란 주제로 심각한 논쟁의 대상이 된 주제들과 수천 년 동안 풀지 못한 난제들을 다룬다. 예지와 자유의지의 문제, 영혼과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 등 신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이슈를 해부한다. 또한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기독교적 의미와 생명 윤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거침없이 뚫고 나간다. 특히 프린스턴 대학의 생명윤리 교수인 피터 싱어를 조명함으로 현대 의료의 중요한 안락사의 문제를 다루어 주었다. 오직 성인에게만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인 person으로 정의하여 황당하게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점은 칭찬하고 싶다. 다른 논문에서 인간 이해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인간원리(anthropic principle)'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왜 인간원리가 중요하고,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2부에서는 신학적 반성이란 주제로 신학의 역사와 르네상스, 에라스무스, 한국 문화와 최초의 한국 침례교 선교사인 말콤 펜윅과 한국적인 한(恨)을 다룬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 속에서 문화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조명한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철학도 신학도 정치도 심지어 예술의 세계도 극과 극은 존재한다. 때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하고, 때론 친구처럼 넌지시 미소 짓는다. 모든 학문은 극과 극 사이에서 토론하고 대화하고 일치점을 찾아간다. 극과 극을 통합시키는 과정을 통해 대가들이 등장한다. 에라스무스가 터툴리안이 벌려 놓은 예루살렘과 에덴을 훌륭하게 통합한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루터가 부화시킨 종교개혁은 인문학자였던 에라스무스가 낳은 계란(318쪽)이었다.
3부에서는 종교학적 지평이란 주제로 현대에 도래한 종교 다원주의적 개념을 분석한다. 신학(theology)란 단어가 더 이상 기독교적인 의미를 넘어 헬라어가 처음 가진 모든 신의 개념으로 보편화되었다. 18장에서 '종교 정의에 관한 아포리아(난점(難點))'에서 언급하듯 해결이 불가능하기에 대화와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이러한 대화와 도전은 "종교학은 앞으로 전 세계적 종교 현상에 대한 더욱 효율적인 범주와 시각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530쪽)."
수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20세기 신학'에서 스탠리 그렌츠와 로저 올슨은 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이라는 양 극단의 관점에서 현대신학을 비평했다. 그는 서론에서 19세기를 '인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단련된 시기'로 정의하고, 20세기를 "9세기에 대한 통렬한 반동으로 시작되었다"고 간략하게 단정 짓는다. 철학사적으로 봐도 19세기는 데카르트에게서 시작된 근대 철학이 막바지 꽃을 피우는 시기였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정상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20세기의 뚜껑을 열자마자 그들의 환상을 산산조각 나고, 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다. 시계의 부품 속에 잡아넣었던 하나님이 저 먼 우주 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실존주의와 신정통주의로 대변되는 20세기의 시작은 침울하고 우울한 안개 속이었다. 그래서일까 철학사를 간략하게 살핀 프랭크 틸리는 실존주의를 '환멸과 절망의 철학', '인간의 노력을 인위적으로 무로 환원하는 허무의 철학'으로 정의한다. 운명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프랭크 틸리의 선언은 악담으로 들린다. 저자도 10장 역사의 위안을 다루면서 현대인들이 '더 이상 역사는 단어는 아무 의미도, 도전도, 좌절도 전해 주지 않는 것 같다(265쪽)'는 염려스런 평을 내린다. 결국 역사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바로 사람, 곧 나사렛 예수(270쪽)'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현대 종교의 침울함은 큰 교회나 탁월한 프로그램의 부재가 아닌 십자가를 지고 가는 바로 그 사람의 부재다. 극우와 극좌의 충돌은 타협과 합의로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제자들만 해결할 수 있다.
통시적 관점에서 수천 년 동안 흘러온 사유의 궤적을 훌륭하게 통찰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주류 철학과 신학자들의 담론에 빠져 시대의 흐름을 놓치기 쉬운 보수주의 교인들과 학자들이 꼭 참고해야 할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리즘을 통해 분석되고 조명된 다양한 스펙트럼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영아를 인격체로 다루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그의 생명윤리를 간단히 소개하는 사명(191쪽)'을 소개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고 말한다. 종교의 정의 문제(aporia)를 정의함에 있어서도 가능성만을 남겨 놓고 마무리한다. 이 부분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지나칠 정도의 학자의 소심함이 엿보인다. 몸을 지나치게 사리는 듯한 학자의 겸손함이 지성의 명료함을 흐리게 한다. 조금만 더 담대하고 비평이 예리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었을 터인데 아쉽다.
거대한 학문으로 들어가는 문(門)과 같은 책이다. 저자도 지면상의 한계를 아쉬워한다. 읽어 가는 내내 언급된 학자들과 이론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갈망이 일어난다. 시대가 어지러울 땐 시대정신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제목에 '프리즘'을 넣은 이유를 '프리즘처럼 현대종교철학의 여러 측면을 분해하고 조명하는 의미(13쪽)'로 사용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지성의 혼란기에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배국원 교수의 책은 현재를 통찰하고 미래는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해 준다. 등산하다 길을 잃으면 주변에서 높은 지점으로 올라가 방향을 다시 잡으라는 말도 있다. 통시적 관점에서 신학과 철학을 내려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정현욱 / 로고스서원 연구원, 반석교회 부목사, 부산극동방송 '책과 음악의 행복한 만남'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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