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사람은 언제 변화될까?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시공주니어
사람은 언제 변화될까?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교육학자들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교육이 되니까? 교육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블레이즈 파스칼은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라고 말했다. 즉 삶은 천성의 확장이지 변화가 아닌 것이다. 기독교의 전적 타락 교리는 변화는 극히 한정적이며,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죽어도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전적 타락 교리’로만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신비로운 존재다. 특히 변할 것 같으면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천사가 되어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목사인 자신도 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쨌든 완고한 사람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책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절대 읽은 책은 두 번 읽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은 무려 세 번이나 읽을 책이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자린고비 중의 최고봉이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 유일한 유언 집행인, 유일한 상제였다. 말리가 죽었을 때 스크루지는 울지 않았다. 이 세상에 스크루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백 미터 밖에서 보여도 등을 돌리고, 지나가면 등을 보면 욕하지 않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추워도 석탄은커녕 난방 기구는 없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나가 봐!”
조카의 순수한 인사조차 의혹의 눈길로 본다. 하물며 기부를 부탁하는 사람들에게랴. 하여튼 크리스마스 전날, 7년 전 유일한 친구 말리가 죽은 날이다. 말리가 남긴, 그러나 이제 자신의 집이 된 허름한 주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날 밤 말리의 유령을 만난다. 말리는 스크루지에게 쇠사슬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만든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럼 스크루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말리는 울부짖는다. 유한한 생 동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뭐든 해야 했는데... 단 한 번뿐인 삶의 기회를 놓친 것을 슬퍼하며. 자네는 피해야지.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세 유령이 올 거라고. 말리 유령은 떠났다. 그러니 허튼수작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나 올 것은 와야지. 세 유령이 스크루지를 찾아온다. 먼저 과거의 유령이 찾아온다.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고향이다.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휑뎅그렁함으로 가득 찬. 쓸쓸한 방. 한 남자아이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스크루지는 어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없이 운다. 왜 울었을까? 그가 읽고 있던 책은 그에게 꿈을 주었다. 알리바바,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다시 행복했던 크리스마스이브 무도회장으로 간다. 페치위크 영감이 사람들과 자신에게 베푼 선행을 본다. 단 몇 파운드로.
다시 시간이 지나 사랑했던 아가씨가 스크루지를 떠난다. 점점 황금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알기에. 무일푼의 자신을 스크루지가 선택할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홀로 남겨진 스크루지. 그렇게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을 떠난다.
현재의 유령이 잠시 후에 나타난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음식을 사는 행복한 사람들, 자신의 서기인 봅 크래치트의 즐거운 파티. 그러나 봅의 마지막 아들 팀은 야윈 손을 가지고 있다. 스크루지가 팀을 보며 유령에게 살 수 있으냐고 묻는다. 디킨스는 그때가 ‘스크루지가 그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해설한다. 그래, 처음. 처음으로 죽어가는 아이에게 마음을 준다. 그러나 유령은
“미래가 이 환영을 바꾸어 놓지 않는다면 저 아이는 죽게 된다.”
고 말한다. 미래는 누구의 것일까? 독자들은 스크루지가 아닐까 추측하리라. 어쨌든 스크루지는 그 집을 떠나면서도 팀에게 마음을 거두지 못한다. 다시 데려간 곳은 낮에 사무실을 찾았던 조카의 집니다. 조카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스크루지를 참을 수 없다고 말하자. 이렇게 대꾸한다.
“난 참을 수 있어! 난 그분이 불쌍해. 그분한테 화를 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어. 그 고약한 성미 탓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누군데!”
누굴까? 더 들어보자.
“언제나 당신 자신이라고. 자, 봐 외삼촌은 우리가 싫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집어넣으시고는, 우리 집에도 안 오시고 우리하고 식사도 안 하시려고 해. 그 결과가 어때? 뭐, 그렇다고 그분이 굉장히 만찬을 놓치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카의 말에는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그것은 같이 마음을 나누고 서로 축복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누리는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고립시키는 외삼촌을 보면서 조카는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조카의 음성을 행복으로의 초대장으로 이해하면 안 될까?
대화는 계속된다. 그리고 그들은 웃고 또 웃는다. 전염성이 강한 독감처럼 온 가족이 웃음에 전염된다. 마지막에 조카는 외삼촌 스크루지를 위해 축배를 든다. 현재 유령이 떠나기 전, 유령의 발밑에 달라붙어 있는 두 아이를 발견한다. 그들은 사람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인데 늘고 추하다. 사내아이는 ‘무지’, 계집아이는 ‘빈곤’이다. 그리고 사내아이의 이마에 써진 글을 읽어 준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새겨진 ‘최후의 심판’이라는 글씨도 보인다. 이것을 부정하라!”
더욱 무지하고 무지하라. 그러면 종말이 올 것이다. 유령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곧 모자를 덮어쓴 유령이 기다란 망토 자락을 질질 끌면서 땅 위에 안개처럼 스멀스멀 다가온다. 그는 미래의 유령이다. 스크루지의 미래를 보여줄. 마지막 유령.
스크루지가 죽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스크루지가 병에 걸려 죽어갈 때 아무도 가지 않고 죽기만을 기대했다. 죽어 시체를 묻는다. 여인이 멀쩡한 옷을 벗겨내 버린다. 침대 위에 누군가 누워있다. 그는 안다. 저기 홀로 누워 있는 자를. 쓸만한 모든 것을 약탈당하고, 울어줄 이 아무도 없이 홀로 누워있는 저 사람. 자신의 죽음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을 보여 달라 한다. 있다. 유일하게 마음이 움직인 사람. 그러나 그들은 스크루지의 죽음을 통해 애통이 아닌 행복을 느낀다. 빚을 졌기 때문이다. 서기 봅의 막내 팀도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이 한결같이 절대 잊지 않을 거라 맹세한다. 미래의 유령은 마지막으로 그를 공동묘지로 데려가 한 묘비를 가리킨다.
에비니저 스크루지
침대 위에 있던 사내가 그곳에 있다. 운명을 바꾸게 해달라고 최후의 기도를 드리지만 유령이 뒤집어쓴 망토는 변해간다. 마침내 기둥이 된다. 그랬다. 그것은 침대 기둥이었다.
아직 미래는 오직 않았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날이 밝자 스크루지는 웃는다. 경쾌해진다. 인사도 하고 최고의 칠면조를 서기인 봅의 집에 보낸다. 자꾸 웃음이 나온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웃는다. 지각한 봅에게 다가가 월급을 올려줄 거라 약속한다. 인정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다름이 비웃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웃음이 있으면 된다고 확신한다.
디킨스는 결국 자신이 어떻게 타인을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걸까? 디킨스의 속내를 알 도리는 없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는 독자로서 자신이 천사처럼 대우받고 싶다면 먼저 이웃을 천사처럼 대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모호하고 신비한 인간이란 존재는 결국 누군가에게 받은 대로 갚는다는 공식에 대입해도 될 성부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책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디킨스가 이 책을 발표할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을 발표할 때가 1843년이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생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노동료를 받았다. 배고프고 고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심술궂고 수전노인 스크루지를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도 가난한 노동자들과 이웃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 악덕업자들을 고발한다. 미래의 유령이 보여준 스크루지는 부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던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웃들에게 조금만 손을 벌리면 된다. 세 명의 유령, 아니다. 말리까지 하면 네 명의 유령이다.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망각의 벽을 부수고 스크루지의 순수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첫사랑, 그리고 현재와 미래까지. 순수했던 스크루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마지막에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존재로 전락하여 무덤에 묻힌다.
봅의 막내는 죽었다. 그러나 봅은 ‘잊지 말자’라고 가족들에게 말한다.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죽은 후의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의 몫이기도 하다. 판단은 죽음 이후가 아닌 이전에 이미 그의 삶을 통해 결정되어 있기에. 다시 깨어난 스크루지가 조카를 찾아가고 봅에게 차 한 잔을 권하고 불을 지핀다.
“다른 일하기 전에 우선 석탄 통부터 하나 더 사 오게!”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어디 있을까? 있으나 마나 한 난로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그리고 팀은 죽지 않았다. 유령이 보여준 팀의 죽음은 스크루지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 분명해진다. 스크루지가 계속해서 도움을 주자 ‘팀은 다행히 죽지 않았다’. 그 후로 스크루지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망각되지 않을 것이다. 아! 행복한 결론이여, 이것이 진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나누려 했던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닐까? 지금도 성탄절이 되면 예수는 기억된다. 온 세상과 나라들을 막론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고자하는 것은 욕심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에 결론은 내리지 말자. 단지 어릴 적 순수함을 간직한다면 얼마든지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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