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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를 보았노라

샤마임 2017.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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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를 보았노라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19-20)




놀랍다 이 말씀... 인간의 인지 한계를 넘는 것이 부활이다. 듣고 또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 주님은 억지로 믿으라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신다. 제자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주님께서 보여주신 몸은 부활 후 완전해진 몸이 아니다. 그 몸에 흔적이 있다. 


손에 못자국이 있고, 옆구리에 창자국이 있다. 부활의 주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흔적을 지우지 않으신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야 한다면 그 흔적까지 닮는 것이다. 바울이 내게 주의 흔적(스티그마)이 있다고 말한 것은 참으로 바른 것이었다. 


계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성경을 수십 번 읽었는데 왜 이것을 몰랐을까? 왜 따로따로 알았을까? 어느 순간 깨달아지는가 보다. 성경을 아는 시간은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인가 보다. 진정 부활의 주님을 보았고, 그 주님을 알았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본 것이다. 주님은 여전히 그 상처를 안고 계신다.


하루하루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느낌이고 수도 없이 죽음을 묵상한다. 하루라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것까지 부정해야 하리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상처를 가지고 계신다. 그 상처가 나를 살게 한다. 오늘 주님의 그 상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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