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먹지 않고도 배부르다.
[독서일기] 먹지 않고도 배부르다.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토요일이다. 금요일인 줄 알았는데 토요일이라니. 이번 주는 뭘 하며 보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기는 쓰는 이유는 잊혀가는 기억을 붙잡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하면 왠지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허망한 마음을 잡으려 기록하여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억하려 기록하면 마음을 놓고 쉽게 잊고 만다. 고대 사람들이 기억력이 좋았던 것은 기록할 종이나 펜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억하려 기록하지만, 기록하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역설. 이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9시가 조금 넘어 강의가 있는 고흥을 향해 출발했다. 어제 지도에서 찾은 대로 130km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한 시간 반이면 가리라는 생각을 어제 자기 전했다. 그래서 9시에 출발하면 적어도 10반에는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네비를 켜는 순간 도착 시간이 11:45이다. 어? 왜 이러지? 130km 면 한 시간 반인데? 순간 내가 착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은 100분이 아니라 60분이었고, 고흥은 고속도라가 아니라 국도를 타고 가기에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차고 보다 더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차! 큰일이다.
그렇게 나는 60km 국도는 100km/h 넘게 달려야 했다. 도착 시간 10:48. 겨우 숨을 돌렸는데 글쎄 앞서 진행하시는 분이 11시 15분까지 하고, 10분 쉬고 나니 거의 11시 반이 돼서야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짧은 40분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 제목은 기독교인의 독서법. 과연 순진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에게 책 많이 읽으면 성공한다는 사기는 칠 수 없고, 책을 잘 읽으면 착한 사람이 된다는 뻥도 칠 수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문자의 간단한 역사와 책이 가진 몇 가지 특성만을 꼬집어 주었다.
40분 강의 시간에 불과 3명이 눈을 감고 아멘을 연발했다. 함께했던 장로님 말씀에 의하면 어제저녁 한숨도 한 잔 애들이 딱 3명 있었다고 한다. 그 세명이 그 세명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점심시간 직전에, 한숨도 자지 못한 애들을 데리고 딱 3명안 재웠다는 것은 기억이다. 이건 능력자가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다. 고장 난 시간 덕분에 12시까지 마치기로 한 강의는 10분을 넘기고 말았다. 12시가 넘자 애들이 그랬다. 아깐 프로라서 12에 끝난다고 했는데 아마추어네! 헉! 내가 아마추어라는 걸 들키고 말았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10분을 더했다. 그래도 그렇지 강의료를 받고 어찌 30분만 강의한단 말인가? 그렇게 아마추어는 우기며 10분을 더하는척하면서 15분을 더 했다.
참석한 애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같이 오신 중 고등부 교사들이 밥을 하고 고기를 구웠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교사들이 100% 참석했다. 놀라운 교회다.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고기가 별미다. 삼겹살은 역시 숯불에 구워야 맛있다. 똑같은 고기라도 일반 버너 철판에 구우면 별로다. 그런데 숯불을 피워 구우면 맛이 기가 막히다. 아마도 가스버너 불과 숯의 온도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숯에서 나오는 다른 성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난 그렇게 염체 불구하고 애들과 친한척하면 밥을 먹고 고흥을 나왔다.
순천이 지척이다. 15분만 돌아가면 순천에 갈 수 있다. 온천엔 형설 서점이 있는데 수십만 권이 소장된 거대한 서점이다. 지전동에 있는 곳이 언니가 하는 본 서점이고, 기적의 도서관 근처가 동생이 하는 작은 형설 서점이다. 가까운 지전동 본점으로 향했다. 역시 책이 많다. 고민하지 않고 곧장 기독교 서적으로 용감하게 걸었다. 이젠 어느 곳에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 안다. 고민할 것도 없다. 곧바로 왼쪽 직진 다시 작은 문을 통과 2m 우회전해 들어가면 종교 서적 코너다. 기독교 서적이 2/3 고 불교 서적이 1/3이다. 지난여름에는 불교 서적은 17만 원 정도 구입했다. 영광에서도 십만 원 넘게 구입해 불교서적인 수십 권이다. 그렇게 작년 여름은 불교서적에 함몰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결론, 불교는 답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오늘은 기독교 도서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원래 공짜로 들어온 돈은 그날 써야 한다. 안 그러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30년 전쯤에 고등학교 다닐 때 거리에서 만 원을 주었다. 당시 만 원이면 지금의 거의 10만 원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녔다. 뭐 했나고? 친구들이랑 뿅뿅실에 들어가 갤러그를 비롯해 1945, 뽀글뽀글 등을 해서 모든 돈을 썼다. 다행히 잃어 버리기 전에 썼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그런데 오락실을 나오는 순간 왠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돈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우울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론 주운 돈이라고 함부로 쓰지 않고 누가 찾으로 올까 봐 한참을 그곳에 서있다 가거나 며칠을 가지고 있다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야 썼다. 난 이렇게 점점 이 땅에서 성화를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탈락이나 취소 불가능한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은 회심과 칭의가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보라, 나는 성도의 견인도 확실하게 보여 줄 것이다. 마지막 하나님과 같은 영화의 단계에 이르러 면류관을 주님께 던지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를 찬양할 것이다.
그렇게 구입한 책이 이렇다.
문봉주 <성경의 맥을 잡아라> 두란노
해로 반 브루멜른 <기독교적 교육과정 디딤돌>
김용성 <하나님 이성의 법정에 서다>
파울 알트하우스 <루터의 신학> 크리스찬다이제스트
양승훈 <물에 빠져 죽은 오리> 죠이선교회
옥성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임영만 <교육음악개론> 한국 장로교출판사
문성호 <민족음악과 예배> 한들
후스토 곤잘레스 <현대교회사>은성
존 뉴톤 <영적 도움을 위하여>크리스찬다이제스트
앤 구페 <우리 형제 이스마엘> 두란노
박영호 <청교도신앙> CLC
장경철 <책 읽기의 즐거운 혁명> 두란노
수잔데 디트리히 <성서로 본 성성> 컨콜디아사
편집부 <기독교 명저 60선> 종로서적
위르겐 몰트만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 대한기독교출판사
가가와 도요히꼬 <한 알의 밀알> 기독지혜사
백금산 글, 김종두 그림 <만화 롤 보는 만화 성경 개관> 부흥과개혁사
가격은 7만 6천 원. 싼 걸까? 비싼 걸까? 사실 처음 가격은 10만 원이 넘었다. 왜 이리 많이 나왔다고 물으니 옥성호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도 보여서 함께 담았다. 바로 이 책의 정가가 12,000원인데 절판되었다고 2만 원을 불렀다. 몰트만의 <성령 능력 안에 있는 교회>도 정가가 불과 3,600원인데 만 원을 불러서 그것도 뺐다. 옥성호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의 경우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3천 원에서 6천 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굳이 2만 원을 주고 살 필요도 없고, 그만한 가치 있는 책도 아니다. 마이클 호튼의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도 가져왔다고 너무 비싸서 뺐다. 그렇게 맞추어진 가격이 7만 6천 원이다. 여기에 이레서원에서 보내온 케네스 베일리의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까지 하면 총 19권이다. 책이 쌓이니 배가 보르다. 좋다!
이번에 책이 완전히 기독교로 돌아왔다. 그동안 문학서적에 빠져있었고, 불교서적에 흠뻑빠져 있지 않았던가. 글을 써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도 있고, 이젠 서서히 이전 책 읽기 모드로 돌아고 있는 것 같다. 즐거운 마음으로 두 개의 검은 봉다리에 나누어 담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착한 아빠가 되기 위해 파닭을 주문해 들어갔다. 역시 애들이 파닭을 보는 순간 온몸을 파닥 거린다.
치킨을 먹는 아이들이 모습을 보니 참 행복하다. 부모는 자식 밖에 없는 것 같다. 열심히 살자. 사는 게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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