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 묘비명
묘비명
김광규
『한 줄의 시는 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저는 김광규의 시에서 존재의 무의미를 읽습니다. 일종의 ‘허무’인 셈이죠. 길이남을 비석이라 하지만 사유의 가치를 상실한 비석이기에 단지 ‘귀중한 사료’로서만 존재할 뿐 그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75년에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합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파헤치는 그의 시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존재가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비판적, 풍자적, 반어적
주제
세속적 가치에 함몰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질문합니다.
시인은 존재의 의미를 사유하지 않는 속물을 기리는 어느 문인에 대해 깊은 희의감을 표시합니다. 그가 남긴 묘비는 불에 타지 않으며, 역사적 사료가 될 만큼 사라지지 않을 비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없는 속물에 불과합니다. 그는 시도 읽지 않았으며,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성공했고,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덕분에 비석을 남겼습니다. 비석은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남겼습니다. 비석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길이 남아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과거를 유추하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묻습니다.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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