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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5. 13:1-9 섬김에 대한 권면

샤마임 2018.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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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3:1-9 

섬김에 대한 권면


1. 말씀 읽기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2. 묵상

13장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히브리서는 마무리하면서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유대인들이며,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갑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동족과 유대인이라는 공동체는 삶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공동체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심지어 핍박과 살해의 위협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것인가를 심각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교(구약)와 기독교를 적나라하게 비교하면서 참 진리가 무엇이고, 구약이 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입니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구약으로 대표되는 옛 언약들에 관련된 인물과 성막의 제도들을 그리스도와 새 언약에 비교합니다. 그런 다음 11장에서 구약의 존경받는 인물들이 무엇을 보며 따라 살았는지 설명합니다.


12장과 13장은 지금까지 모든 것들을 정리한 다음, 그럼 참 진리를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결어(結語)이자 적용인 동시에 진리를 담지한 이들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설명합니다. 저는 13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서두에 해당되는 1-9절까지를 묵상합니다. 이곳에서는 세 종류의 섬김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성도를 섬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섬김입니다.


1) 성도를 섬김

편지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의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우리는 12-13장이 섬김과 예배라는 두 기둥 속에서 반복적인 권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의 기둥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거룩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하나는 성도 간의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 돌보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예배와 섬김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두 기둥처럼 서로 엮어져 있으며, 하나만으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진리 없는 사랑은 무의미한 것이고, 사랑 없는 진리는 거짓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히브리서 기자는 무엇을 권면할까요?


.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아무리 박해가 심하고 고난이 깊어도 형제 사랑을 계속한다면 그들은 세상을 이기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성공의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는 한 가지 일을 하기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일이 옳고 바르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음으로 우리가 믿는 진리가 바르고 참인 것을 삶으로 설교하게 됩니다.


형제 사랑(φιλαδελφία)은 서로 간의 연대와 연합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되었습니다. 즉 주님의 이름으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가족이 되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가족이기 때문에 서도를 돌봐야 할 의무와 특권이 생겼습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의견이나 이견에 있음에도 대등한 존재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강압적으로 위협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서로 대등한 주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더 큰 능력이나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형제 사랑의 기초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중단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은 영속적인 것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데살로니가 교회에 선을 행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6:9, 살후 3:13) 악하거나 더러운 것은 즉시 버리고, 선하고 아름다운 일은 계속해야 합니다.


. 손님을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손님(φιλοξενίας)은 외국이나 낯선 사람을 말합니다. 때로는 나그네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나그네 대접하는 행위는 지극히 명예로운 일이었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손님은 몇 가지 점에서 보호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소수 또는 한 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낯선 곳에 갈 때 자신을 보호할 사람이 없는 약자입니다. 또한 이동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배가 고픕니다.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중요한 원칙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곳에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2)다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온 하나님과 천사들을 말합니다.(참 창18, 19장 등) 천사를 만나는 땅에서 하늘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것을 자신을 돌보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천사는 어떤 특정한 존재이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모든 사람들입니다.


.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성도 섬김의 세 번째 특징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라는 것은 고민하고 걱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라는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학대받는 자를 기억하는 권면의 전제를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3)이라고 말합니다.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타인들의 고통을 돌아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 그리고 학대받은 자를 생각하는 것들은 주님 안에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이 교회 안에서의 사랑이라면 손님 대접은 교회 밖을 향한 사랑입니다.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직한 반응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자신을 돌봄


두 번째 권면은 자신에 대한 돌봄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이기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돌봄은 육신적 안락이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적 돌봄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 결혼을 귀히 여기라


이것은 사랑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부라는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욕망은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욕망을 다스려야 합니다. 말씀 안에 자신을 묶고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침소를 더럽히는 것과 음행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간음이 우상숭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것이 거룩이고, 순결입니다.


. 자족하라.


두 번째 권면은 자족에 대한 권면입니다. 욕심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탐하는 것입니다. 죄는 잘못된 방법으로 얻으려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경고합니다.


자족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단지 마음의 가라앉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존재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화시킵니다. 타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을 나누고, 손님을 대접하는 것보다 자신의 부를 위해 인색하게 되고, 자신의 탐욕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족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근본적인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5) 문자 그대로의 인용이 아니기 때문에 구약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지만 신명기 31:6,8에서 가져온 곳으로 보입니다. 신명기 31:6-8을 봅시다.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31: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31: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 부분은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요구합니다. 자족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6절의 말씀대로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담대하게 합니다.


3) 목회자를 섬김


마지막 세 번째 섬김에 대한 권면은 목회자를 위한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는 보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말합니다. 이곳에 나타난 인도자들의 특징입니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일러 준다는 말은 전해주고 풀어지고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며, 직접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인도하다(ἡγέομαι)라는 단어는 앞서다’ ‘먼저 가다’ ‘깊이 생각하다등의 복합적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목자가 양들을 돌볼 때 깊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NASB는 다섯 번에 걸쳐 ‘regard’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인도자들은 배려하고 앞서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인도자들을 생각’(Μνημονεύετε) 해야 합니다. 생각하라는 기억하라는 뜻으로 마음속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홀대하거나 경솔히 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존귀하게 대하게 됩니다. 생각하다는 말은 7절 전반부의 문장을 이끕니다.


후반부의 말씀은 생각하다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후반부의 다른 말씀들을 이끄는 본받으라’(ἀναθεωροντες)라는 동사가 이끕니다. 본받으리라의 기본형인 ‘ἀναθεωρέω‘considering’로 번역되는 문장으로 묵상하다, 사유하다는 의미를 갖도록 요구합니다. 즉 대충 생각하지 말고 깊이 고민하고 사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대로 살았던 목회자들을 생각하고 뒤따라가는 것은 성도의 올바른 삶의 길입니다.


나가면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섬김을 배웁니다. 먼저는 형제간의 섬김, 두 번째는 자신을 섬김, 마지막은 인도자들을 섬김으로 바른 신앙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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