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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에 대한 글

샤마임 2018. 2. 19.



십일조에 대한 글

2008-02-09 11:31:52


온전한 십일조(1)[각주:1]


 



- 모세 율법에 나타난 십일조 -

 

우리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아주 강조한다. 십일조는 교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심지어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으로 책망한다. 또 십일조는 신앙과 직분의 척도가 되고 있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없는 신자가 되며, 직분자로 임명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강단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정도로 십일조는 우리 한국교회에 중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깊이 있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정말 구약에 모세 율법에 명시한 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고 있는가? 강단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외치지만 성경을 찾아보면 실제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또 구약 십일조의 그 사용목적도 지금 우리 한국교회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성도들도 십일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그냥 목사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고,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으면 도둑으로 몰릴까봐 두려워서 자의반 타의반 십일조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분들은 십일조의 올바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축복받는 수단”으로 십일조를 한다. 그래서 강단에서 강조하고 성도들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지 않는지 시험해 보라는 말씀이다(말3:10).

이제 우리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배워보자. 성경은 우리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칙이다. 십일조 헌금도 성경에서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실천해야 할 신앙의 문제이다. 알지 못하고 있는 십일조와 알고 하는 십일조는 분명히 다르다. 하나님께서 왜 구약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는지 그 의도와 목적을 분명히 배워보자. 그리고 구약의 십일조가 신약교회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실제로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 십일조를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십일조 헌금의 종류와 그 용도

1. 첫 번째 십일조: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인의 보수

첫 번째 십일조는 이스라엘 각 지파가 레위 자손을 위한 생계비로 드렸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12지파에게는 기업이 주어졌으나 레위 자손은 특별히 성막봉사를 위하여 선택되었기 때문에 땅이 분배되지 않았다. 레위인들은 12지파에 흩어져 살면서 성막 봉사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을 위하여 12지파에서 십일조를 받아서 그것으로 레위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다. 이 첫 번째 십일조는 하나님이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에게 주시는 보수이다(31절).

 

민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 레위인들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드렸다(민18:26-28).

 

26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받드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받드는 즙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 두 번째 십일조: 구제를 위한 십일조

먼저 신14:28-29을 보자.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 두 번째 십일조는: 

언제 드리는가? 매 삼년 끝에 드린다. 즉 3년째 되는 해와 6년째 되는 해

어디에 드리는가? 각 지파의 성읍에 저축한다.

어떤 용도에 쓰이는가?(목적)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 성중에 우거하는 객, 고아와 과부들에게 구제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3. 세 번째 십일조: 절기를 위한 십일조


신14:22-27

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언제 드리는가? 매년

무엇을 드리는가? 토지 소산의 십일조(곡식, 포도주, 기름의 십일조, 우양의 처음 난 것) 


어디에 가져오는가? 성막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경배자와 그의 가족, 레위인이 함께 먹고 즐거워 한다.

 

* 학자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른데, 이 세 번째 십일조를 첫 번째 십일조와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다. 즉 레위인을 위한 생계비 십일조를 절기 때 함께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신약교회에 적용해 보자.


이제 구약의 십일조를 신약교회에 적용해 보자. 많은 목사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약 율법에 기록한 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고 있으며, 또 그 십일조를 그 용도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적용해 보자.

1) 첫 번째 십일조를 신약교회에 대입해 보자.


구약: 이스라엘 땅에서 기업이 없이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을 위한 생계비로 드렸다.

신약: 특정직업이 없이 교회에서 일하는 자들(목사, 강도사, 전도사, 관리인, 사무원 등)의 생계비로 드려야 한다. 


원리적으로 말하면, 일반 성도들이 바친 십일조는 모두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서도 이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또, 레위인들은 제사장에게 십일조의 십일조를 바쳤다. 그렇다면 오늘날 제사장에 해당하는 직분은 누구인가? 목사인가? 결코 아니다. 


 


2) 두 번째 십일조를 신약교회에 대입해 보자.


구약: 매3년째 되는 해, 즉 3년, 6년에 드리는 십일조는 레위인을 포함하여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비로 사용한다. 7년째는 안식년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 땅을 쉬게 한다.  


신약: 우리는 주로 월급을 받는다. (장사하는 사람은 일단 제외하자). 그러면 우리는 이 십일조를 언제 드려야 할 것인가? 매3년째 십일조를 구제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물론 많은 교회들이 구제사업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제는 예산 책정에 의한 구제금이나 특별 헌금에 의한 구제가 아니라 정규적인 십일조 헌금을 가지고 구제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온전한” 십일조를 한다면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해야 할 것이다.

 

3) 세 번째 십일조를 신약교회에 대입해 보자.


구약은 절기를 위하여 십일조를 사용하였다. 이 절기는 일반적으로 초막절(수장절)이다. 일년의 수확을 한 후에 그것을 성소에 가져와서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레위인과 온 가족이 함께 먹고 즐겼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약교회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 

구약의 초막절(수장절)에 해당하는 절기가 추수감사절인가? 그렇지 않다. 

 

결국 우리 신약교회는 구약 율법이 명시한 십일조의 규례를 문자적으로 따르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들이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현대 교회에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대두된다. 

 

 

십일조의 원리와 정신의 적용


1. 선택?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우리 시대에 적용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십일조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까? 우리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구약의 율법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십일조 제도의 근본적인 취지를 깨닫고 그 정신에 비추어 십일조의 율례들을 자유와 사랑의 율법(약2:12 갈6:2 고전9:21 등)으로 지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구약의 율법 그대로 지킨다면, 더 이상 우리는 신약의 교회가 아니다. 레위지파와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 성전이 있어야 하고, 동물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것은 구속사를 뒤집어 엎어 버리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이다. 따라서 구약의 율법 그대로 지켜서는 안될 것이다. 율법의 온전한 준수는 바리새적인 문자적이고 규범적인 적용이 아니고 원리와 정신의 적용이다. 이것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라는 신약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 

 

2. 구약 십일조의 원리와 정신


① 기능적인 원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


이스라엘은 하나의 하나님 나라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시며 이스라엘은 그 백성이다. 이 관계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성전제사이다. 성전예배를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인 그 백성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복을 주신다. 이 성전제사가 없다면, 거룩하지 못한 백성들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실 수 없고, 그들을 다스릴 수 없다. 이 성전제사를 위해 레위인들이 구별되었고, 제사장이 없어서는 안될 직분자로 세움을 입었다. 이들은 기업이 없으므로 다른 지파들은 이들의 생계비를 지원한 것이다. 그것이 십일조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평화와 안식이다. 이스라엘은 참된 안식의 나라를 구현해야 한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인한 고통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업이 없는 레위인을 포함하여 분깃이 따로 없는 성중에 우거하는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들을 먹이셨던 것이다. 이것이 십일조의 두 번째 용도였다. 


 

② 신앙적인 원리: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이스라엘은 토지 소산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것을 레위인이나 나그네나 고아와 과부 등 사람에게 드린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이 십일조에는 신앙의 원리가 있다. 먼저 가나안 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땅에서 나는 모든 소산물 역시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도록 하셨던 것이다(신14:22-23).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이것을 좀 더 깊이 있게 말해 보자.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복된 삶을 살도록 모든 것을 만드시고, 준비하여 우리에게 주셔서 누리도록 하셨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재산은 사실상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창세기1장과 2장). 타락한 이후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죄인들은 항상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다(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것이 되었다. 본질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며,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고백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고, 그 나라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관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청지기이다. 이런 신앙의 원리와 고백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 

 

3. 신약의 적용


위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의 십일조가 신약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의 원리와 정신을 신약교회에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구약대로 십일조를 하기를 고집한다면, 현재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온전한 십일조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것을 단지 증명할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우리는 사랑의 원리를 따라 십일조의 규례를 신약교회에 성취시켜야 한다. 여기에는 기능적인 원리와 신앙적인 원리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신앙적인 원리의 고백속에서 기능적인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일을 위하여 기꺼이 즐거움과 자원함으로 드려야 할 것이다. 

구약은 특별히 예배와 그 예배에 관련된 자들(성전봉사자)을 위해 헌금하였고, 또한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하여 헌금하였다. 우리도 신약 성경에서 사도들과 교회들이 보여 준 바대로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 제도를 적용시켜 가야 할 것이다. 


개혁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1. 이글은 http://179.0691.org/news_print.html?s=index&no=1468 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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