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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12 충돌하는 두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기

샤마임 2021. 8. 20.

마태복음 2:1-12 충돌하는 두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기

2:1-12


“헤롯 왕 때에...”

예수만 믿으면 만사가 형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네요. 지금도 여전히 아니고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기준의 형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았지, 깊은 산속이나 무인도에서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는 교활하고 악한 헤롯왕이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헤롯왕, 그러니까 이두매 사람들이 유대를 다스리고 있을 때입니다. 이두매 인들은 마카비 왕조였던 요한 히르카누스 1세에게 강제로 할례를 받아야 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식민지였고, 유대에 대한 깊은 열등감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복되어 이두애 출신인 헤롯이 유대를 다르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1절)의 궁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곳은 다윗왕의 후손들이 남유다를 다스렸던 유다의 왕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다윗의 후손이 아닌 헤롯이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가짜 왕입니다. 거짓과 술수로 왕위에 올랐고, 유대인들이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도 않는 거짓 왕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거짓이 횡횡하고, 술수가 난무한 어둠의 시대에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헤롯 왕... 소동한지라”

 

어둠이 어두인 것을 알 때는 빛이 있을 때입니다. 진리가 있을 대 악이 악이 됩니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를 다스리는 헤롯 앞에서 '유대인의 왕'을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왕인데?? 누구 찾아 온다고? 헤롯은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헤룻 궁뿐 아니라 온 예루살렘에 삽시간에 파졌습니다. 유대인들을 알았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뜻의 의미를. 그렇게 기다렸던 다윗의 후손이 드디어 올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가짜 왕이 아닌 진짜 왕이 오십니다.

 

진리 앞에 거짓이 소동합니다. 이제 그들의 거짓이 탄로 날 것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차지한 보좌에서 내려와 진짜 왕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물러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악으로 보좌를 찬탈(簒奪)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애써 잊으려 했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현실이란 대세(大勢)를 변명 삼아 의도적 망각에 숨겨둔 예언이 카이로스의 시간에 거짓의 성을 향해 돌진해 들어옵니다. 그것도 예언자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닌 이방의 현자들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무도 미가의 예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소망은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에 묻혀있고, 예언은 퇴락한 성전의 깊은 곳간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 밖에서 그 예언을 찾아 묻기 위해 사람을 보내십니다. 거짓은 마침내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심판의 때는 다시 찾아옵니다.

 

“헤롯이...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악은 언제나 종교적입니다. 사단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고, 거짓은 진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합니다. 헤롯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진짜 왕에게 자신도 경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의 거짓은 몇 년 후에 베들레헴 어머니들의 눈물 속에서 탄로 납니다. 2000년 전, 야곱의 아내 라헬이 걸었던 슬픔의 길을 베들레험의 어머니들은 또 걸을 것입니다. 자신의 보좌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죽이고, 의인의 목을 자릅니다. 아무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의 어린아이들의 죽어갑니다. 헤롯의 권력에 중독되고 생계가 결정되는 사람들은 헤롯의 칼이 되고 도끼가 되어 의인들의 죽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종교적인 이유로 말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안의 분노의 칼을 숨기고 이스라엘의 예언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유대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성경이 약속한 그 '유대인의 왕'에게 나도 경배하겠다 말합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 고린도후서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가장 거짓되고 악한 자가 가장 경건한 척 자신을 위장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는 자신을 경건하다 생각하지 않고 악하고 죄많은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입니다. 형식적이고 거짓된 것들을 버리십시오.


“그들이... 아기께 경배하고”

 

또 하나의 경배 자들입니다. 아직도 그들은 수수께끼의 인물들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점술가들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단지 성경이 저주하고 부정하게 생각하는 동방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저주받고 멸망받아야 할 그들이 예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정통하고 그곳에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4절)은 경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진짜 왕의 탄생은 그들에게 손해를 끼칠 것입니다. 오히려 없애는 것이 낫습니다. 그들은 입에 풀칠하고, 거짓 왕과 결탁함으로 얻어지는 수많은 부스러기에 눈이 멀어 진짜 왕의 출현이 결코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외로이 세상의 구주로 오시기를 소망했던 변방의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은 경배받으십니다. 복음은 언제나 변방에서 시작되었고, 중심에서 쫓겨남으로 완성됩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하나님의 계시가 다시 이어집니다. 문득, 왜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왜 중간에 길을 잃고 헤롯에게 인도 되었을까? 헤롯에게 나와 갑자기 별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건을 크게 부풀리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어립니다. 적어도 2년에서 4년이 흘러 헤롯이 칼을 빼어 듭니다. 그동안 요셉의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가고, 헤롯이 죽은 후 갈릴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악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현실의 필요에 쫓겨 살아야 할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많이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일은 절대 퇴보하거나 후퇴하지 않습니다. 앞을 향하여 전진하고, 시간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을 정경학적 관점에서 주해하고 강해한 것입니다. 기존의 글을 수정 보완하고 있어서 미완성의 글입니다. 시간되는대로 계속하여 수정해 나갑니다. 마태복음 연구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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