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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묵상] 1. 1-3 말씀이 임하니라

샤마임 2016.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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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묵상] 1.1-3 말씀이 임하니라

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첫 구절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여호와의 말씀

2. 요나-아밋대의 아들

3. 임함.

말씀이 있음으로 사건이 발생한다. 말씀은 역사의 기원이자 원동력이다. 예레미야에게는 말씀으로 나라를 세우기도 폐하기도 한다고 일러 주신다. 말씀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요나의 삶의 의미는 말씀이 임함을 시작된다. 이것이 선지자다 말씀이 임함으로 무엇인가 만들어진다. 말씀은 헛되이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을 창조적 능력을 가진다. 먼저 말씀을 받아라.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옮겨지는 모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동이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 지는 것과 같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지한 선지자가 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택 즉 말씀을 받은 사람이며, 전달하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요나는 선지자가 된다. 선지자라고 자랑하지 말라. 나를 나되게 하는 것은 말씀이다.

창1에서 여호와의 말씀은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다. 말씀이 곧 존재다. 말씀이 있으면 존재가 있다. 무에서 유가 아니다. 존재와 말씀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말씀이 생명이며, 선지자는 생명을 전달하는 자가 된다. 선지자는 절대적으로 피동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말씀을 담지한 능동적 존재가 된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이다. 그는 보통 사람이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 형제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사를 통해 전달되지 않고 사람을 통해 전달된다. 선지자는 통로이다. 천사가 상당부분 말씀을 직접 전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중보자를 선택한다. 모세처럼.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말씀은 목적이 있다. 방향성이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분명한 지시가 담겨있다. 단순한 위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 요나는, 니느웨-저 큰 성읍. 외치라-대항하라. 그들의 악독-그들은 순한 사람들이 아니다. 내-하나님 앞에 상달했다.-때가찾다. 

말씀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파괴하지 않는다. 악을 제거함으로 선을 창조하신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말씀은 심판이다. 3-4장에 요나의 외침은 심판선언이다. 말씀은 그들의 악함을 공개적으로 폭로한다. 그들은 요나를 죽일 수 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시한 장소가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지시할 땅에 데리고 갔듯이 요나가 말씀을 전해야할 곳은 다시스가 아니라 니느웨다. 악독이 가득한 곳이다.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는 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다. 소명은 사역을 의미하지만, 그 사역엔 공간, 즉 지역도 포함한다. 사역과 지역은 분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일, 원하시는 곳에서 사역할 때 진짜 순종이다.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그러나'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곧 동쪽으로 보냈으나 요나는 다시스 곧 서쪽으로 가려고 마음 먹었다. 불순종이다. 요나서에서 불순종한 존재는 오직 요나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과 동식물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한다. 순종과 불순종은 말씀이 임할 때 생긴다. 계명이 없다면 불순종은 없다. 이곳에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말씀을 거역했다.


여호와의 얼굴. 여기서 얼굴은 표피란 뜻이기도 하다. 영어의 페이스는 이곳에서 나왔다. 여호와이 얼굴은 임재의 상징이고, 분노,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면 얼굴을 본다. 분노하면 얼굴을 쳐다본다. 싫거나 미우면 얼굴을 보지 않는다. 돌린다. 요나는 하나님이 얼굴에 등을 보였다. 밉고 싫은 것이다. 여호와의 임재,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일어나. 행동으로 옮김


도망하려 하여, 의도다. 그는 도망가기 위해 일어났고, 이곳은 여호와의 임재의 장소다. 학자들은 요나가 원시적 신앙관에 의해 지역신 개념으로 하나님을 보았다고 한다. 즉 이스라엘 안에만 머무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아니다. 어쨌든 넘어가자. 그는 그곳을 떠나 욥바로 내려간다. 

'마침'도 매우 중요하다. 마침 배가 있었고, 마침 날씨는 화창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뜻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형통해 보인다? 저주다. 이것은 더큰 고난과 채찍을 내리기 위함이다. 반대로, 회개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한다면 요나는 좋은 선지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선지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도망치는데 사용했다. 

배삯을 지불했다. 공짜는 없다. 불순종에도 돈이 필요하다. 악에도 돈이 들어간다. 배삯은 결코 싸지 않다. 비싸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손해보기로 작정했다. 그는 완악해졌다. 요나는 스스로 하나님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도망가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기분나쁨을 하나님께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후자다. 그는 무지하지 않다. 그러나 완악하다. 후에 폭풍을 보고 선창에 자러 가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움직이고 계심을 안다. 그럼에도 완악한 마음을 깨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심판의 징후다. 바로처럼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 마음이 굳어 있다면 조심하라고 일러 주어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욥바에 나려갔고, 배에 내려갔고, 바다에 내려갔다. 그는 세 번 내려간다. 원어는 모두 내려간다.이다. 


악은 생각으로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요나는 왜 이스라엘에 머물려 불순종하는 것을 택하지 않고 하필이면 다시스로 가려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다시스는 땅끝여 여겨졌다는 설도 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되 인간이 갈 수 있는 최대한 먼 곳까지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요나서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존들의 글을 수정 증보하여 전자책으로 출간하었습니다. 히브리어 폰트로 인해 EPUP가 아닌 PDF 파일로 출간했습니다. [에레츠북스]에서 구입하시면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프린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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