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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칼럼] 데뎀찌와 십자가

샤마임 201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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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칼럼]

데뎀찌와 십자가


게임을 할 때 편을 가르기 위해 데뎀찌를 한다. 같이 ‘데뎀찌’를 외치면서 손을 내민다. 손 등이나 손바닥을 내밀어 같은 곳을 내민 사람끼리 같은 편을 먹는다. 데뎀찌는 일본어로 ‘데덴치’에서 왔다. 뜻은 ‘손 하늘 땅’이다. 한자로는 ‘手天地’로 쓰고 일본어는 ‘ててんち’다. 여기에는 무서운 편 가르기가 숨겨져 있다. 손을 낸 사람은 같은 편이 되지만, 손바닥을 낸 사람과는 적이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데뎀찌의 역사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편을 가르고, 남자와 여자로 가르고, 서울대와 지방대로 편을 가르고, 흑인과 백인으로 가른다. 심지어는 아파트 평수나 차의 연비량으로 편을 갈라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소외시키기도 한다. 편 가르기 속에는 자기만을 사랑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주의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하나님이 반드시 창조물을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거나 일부 집단의 것으로 한정시킬 때 데뎀찌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이 만든 모든 데뎀찌를 넘어 하나가 되게 한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하고 모욕했다. 그들을 보는 것도 싫어했고, 같이 식사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모든 데뎀찌를 무효화시켰다. 인종과 민족,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엡 2:13)고 선언한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하기 시작 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드리고,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한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종과 주인이 한 입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했다. 심지어 개로 여겼던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 교제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은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하나 될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의 피’다. 


우리는 혹시 다른 사람을 데뎀찌 하지 않는가. 나보다 가난하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키가 작다고 무시하지 않는가? 십자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십자가 없이 우린 하나 될 수 없다. 


정현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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