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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하는 큐티

샤마임 2014. 3. 9.

나를 살게 하는 큐티

참 신기합니다. 맡고 있는 중고등부가 청매로 큐티를 하기 때문에 저도 같이 합니다. 안하고 넘어가는 적도 가끔씩 있지만 일주일에 5일 정도는 큐티를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별 것 아닌데도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 전에 미리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미리하면 왠지 뿌듯함이 더합니다. 그날그날 하면 짐처럼 여겨지던 큐티가 하루 전에 하니 기쁨이 되네요. 

이전에 했던 본문을 다시 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말씀을 오늘 다시 보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동일한 본문이지만 상황이 달라지니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다가옵니다. 말씀은 오래 곱씹어 볼 일입니다. 

같은 동족이지만 배척당하시고, 우상의 도시인 두로와 시돈에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발견합니다. 도와줄 이유는 없지만, 도와달라는 간청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시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갈망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믿음만큼 일하십니다. 억지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 영광을 보이셨습니다. 육신 안에 숨겨 두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가 드러났습니다. 하늘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높은 산 위에서였습니다. 주님은 다시 내려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먼저 왔던 엘리야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고, 엘리야가 누군지도 알려 주셨습니다. 보는 것이 영광입니다. 

영광이 초라한 예수의 몸에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또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특권이 아닐까요. 큐티는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합니다. 오래된 말씀을 다시 꺼내 읽으면 언제나 새롭게 다시 보이고 다시 들립니다. 이래서 큐티가 좋습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새롭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모두들 큐티합시다.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비추고, 
나를 맞추고, 
나를 바꿉시다.

2014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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