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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정직하다.

샤마임 2014. 3. 5.

봄은 정직하다.

 

봄이 좋다. 따스한 햇볕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향긋한 풀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겨우내 움츠린 등이 조금씩 펴진다. 하늘을 향해 한껏 담은 봄기운을 내 뿜어 본다.

 

이제 비도 그치고 햇살이 대지를 데운다. 동장군의 눈치를 보던 새싹들이 봄처녀의 등장에 미소를 짓는다. 대지 속에 숨어있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내민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반갑다고 인사한다.

 

봄은 이렇게 정직하다.

 

이젠 가스비도 덜 나올 테지. 창문을 열어도 돈 걱정 안 해도 된다. 찌든 마음 훌훌 날려 버릴 테다. 거실에 두었던 고구마와 무가 봄이 왔다고 알린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다. 거실이 답답하다고 밖으로 나가자고 아우성이다.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로 옮기니 훨씬 예뻐 보인다. 정직하게 자랐다. 나날이 변해가는 온도차를 몸으로 체득하며 봄 왔다고 걱정 마란다.

 

 

오늘 문득 봄의 정직함에 이상화의 시구가 아른거린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시리고 아픈 봄이다. 그러나 지금은 봄이 손 안에 있다. 작은 호미 안에, 작은 담쟁이 넝쿨 안에, 대지에서 올라온 푸르른 희망 안에 있다. 모두가 행복한 되길 바란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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