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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페이퍼북에 대해

샤마임 2013. 12. 26.

독서에세이 

페이퍼북에 대해

 

유고슬라비아(現 세르비아) 출신 작가인 조란 지브코비치가 쓴 <환상의 도서관>(북폴리오)에 보면 페이퍼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내용인지 직접 들어보자.

 

“나는 항상 페이퍼paperback 책에 대한 굉장한 경멸감을 느낀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숭고하고 고귀하게 유지해야만 하는 이상을 극도로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식하고 무지한 자들만이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법이다. 훌륭한 작품은 겉모양이 어떻든 간에 훌륭한 작품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겉모양이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신은 값비싼 물건을 낡은 신문지로 포장하는가? 그리고 위대한 문학작품이야말로 세상 모든 물건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 아닌가!

나는 제목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제목은 가죽 장정에 금박 글자를 박은 고급 판형에 어울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페이퍼백의 평범한 마문지 표지로 만드는 건 거의 신성모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퍼백을 만드는 사람들은 당연히 파렴치한 작자들이다. 그들에게 신성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윤을 내는 것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말이라도 얼마든지 만들어 사용할 것이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돈뿐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계속해서 남용하고 평범한 싸구려로 만들면 결국 어떻게 될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환상의 도서관, p155)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조란 지브코비치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얼마 전 아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구입하며 불만을 넌지시 표시했다. 페이퍼북이란 이유 때문이다. 가볍게 보인게 탓이다. 페이퍼북은 쉽게 뜯겨지고 보존이 용이하지 못하다. 오랫동안 간직하며 읽고 싶은데 페이퍼북이라 마음이 상한 것이다. 좋은 책을 저가의 페이퍼북으로 펴내면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얼마의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양장본을 소장하고 싶다.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조란 지브코비치가 대신해 준다.

 

그러나 출판사도 할 말은 있는 법! 페이퍼북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펭귄클래식은 저가로 양질의 문학작품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도 독자 우선이다. 지브코비치의 주장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내용은 포장을 앞선다. 읽고 싶은 욕망을 고가의 비용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니 페이퍼북을 펴내는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내야하지 않을까.



페이퍼북의 대명사인 펭귄클랙식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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