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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택 단편소설 화수분

샤마임 201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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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설가 

전영택 단편소설 화수분




“군목(軍牧)을 지내다 제대한 백인수는 성탄전야를 맞아 부유하게 살고 있는 누이동생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동생 부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손님을 초대해 유흥 속에 성탄전야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새벽에 찾아온 성가대에게는 푸짐한 선물로 환대했지만, 정작 담 모퉁이에서 죽어가는 어린이가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는 외면한다. 이 모습을 본 백인수는 세상에 환멸을 느낀다.”(강원일보 소개)


전영택(田榮澤, 1894년~1968년)은 초기 한국 문학의 특이한 작가이다. 평양에서 출생하여 평양 소재 대성중학을 거쳐 일본 아오야마 학원 문학부와 신학부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캘리포이나 주 퍼시킥 신학교에서 공부한다. 1918년 일제 강점기가 한창일 때 김동인 주요한과 더불어 한민족 최초의 문학동이지인 <창조>를 창간한다. 1935년에는 기독교 잡지인 <새사람>을 발행한다. 근대 문학의 초기 작가로서 현실을 파고들면서도 심리적인 효과를 그대화시켰다. 


광복후 조선 민주당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냈고, 중앙신학교(강남대학교), 감리교 신학대학교 교수 및 국립 맹아하교 교장과 기독신문 주간 <신생명>의 주필을 맡아 활동한다. 1963년 대한민국 문화 포상 대통령상까지 받았으나 68년 불의의 교통사로고 사망한다. 


전영택은 목사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견지하지만, 가난한자들과 불우한 이들을 주목한다. 특히 '크리스마스 전야 풍경'에서 읽혀지듯 성탄의 참뜻을 잃어버린 교회를 질타한다.


1894년 평양성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한문을 익혔으며 11세 때부터 보동학교, 대성학교에서 수학했다. 19세 때부터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공부하여 고등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여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19년, 26세 때 김동인, 주요한 등과 함께 문예지 「창조」를 발간했으며, 동경 유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창조」를 중심으로 하여 '혜선의 사'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단편 및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화수분'은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1927년 목사가 되어 각종 목회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감리교신학교 교수와 「기독신문」의 주간을 지냈다. 이후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 「한국복음신문」등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68년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종교적 색채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출처 : 알라딘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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