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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독서는 배타적 사랑의 밀담이다.

샤마임 201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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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독서는 배타적 사랑의 밀담이다.

 

나에게 몇 가지의 책 읽는 버릇이 있다. 먼저 책을 사면 겉표지를 넘겨 가장 먼저 나오는 내지에 나의 사인과 구입한 날짜와 장소를 적는다. 가끔씩 사게 된 이유와 그날의 정황 또는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놓는다. 그렇게 하고나서야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한다. 사인은 아이가 태어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책을 타자에서 우리로 끌어들이는 순간이다. 더 이상 책은 그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책’이 된다.

 

또 하나의 버릇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몹시 괴롭힌다는 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메모할 펜이 없으면 불안하다. 책을 펼치기 전 연필과 형광펜을 준비 한다. 읽어가면서 중요한 문장이나 내용을 밑줄치고 표시해 두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시 읽었던 느낌이나 생각들이 책을 덮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밑줄과 메모는 기억을 보존하고 담아두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는 횟수가 극히 적어졌다. 메모도 밑줄도 그을 수 없기 때문에 반납하는 순간 나의 기억과도 이별하는 슬픔을 겪는다.

 

이런 습관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 빌려서 읽을 수 없으니 사서 볼 수밖에 없다. 한 달에 수십 권을 읽었다는 것을 그만큼의 돈이 책값으로 지불되었다는 말과 동일하다. 심지어 책도 빌려 주지 않는다.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은밀한 마음을 들킬 것 같기 때문이다. 독서광들은 나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뿐 아니라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박민영은 그의 책 [책 읽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책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 이런 내가 책은 지저분하게 본다. 내가 읽은 책들은 온갖 메모와 표시로 어지럽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떠오르는 것, 의문 나는 것들은 모두 여백에 적고 밑줄 치고 표시를 하기 때문이다. …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빌려 읽지 않고 거의 사는 편이다. … 메모를 하면서 … 나는 책을 누구에게 빌려 줄 수도 없게 되었다.”(박민영, 240-242)

 

독서는 정보를 얻는 수준의 거래가 아니다. 영혼의 호흡이며, 내밀하고 배타적인 사랑의 밀담(密談)이다. 그것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카드빚과 책과의 사랑은 정비례 관계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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